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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아버지의 지게

by 머구리1 2014. 8. 4.

 

 

 

 

 

 

아버지가 살아 계실적에, 항상 집에는 아버지의 지게가 있었다.

아니 집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시는 곳에는 분신처럼 항상 지게도 같이 따라 다녔다.

 

증조 할아버지는  5남매를 두셨다.

고모 할머니 한분을 포함해서 나머지 세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난 기억하는데

유독 내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뵙지 못했다.

다른 형제들은 다 오래 사셨는데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단명하셨다.

 

아버지 8살때 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돌아 가셨다고 한다.

그 전부터겠지만 아버지의 어깨에서 지게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어린 어깨에 매달려 평생의 멍에가 되었던

아버님의 지게는 몇번이나 바뀌었겠지만

마지막 돌아가실때까지도 항상 아버지의 옆을 지켰다.

아버지는 경운기를 가져 갈때도 항상 지게를 얹어서 같이 움직였다.

 

그 등에 지게를 평생 못 벗으신것은 아마 가족때문이리라.

자신의 다섯 자식을 위해, 고통스런 지게를 벗지 못하셨으리라.

자신의 어깨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다 혼자서 짊어 졌으리라..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욕심많은 큰형과 형수는 결혼을 해서까지 내 아버지를 자신의 머슴으로 부려 먹고는

내가 태어날때쯤 해서

산골짜기에 가재가 발 씻는곳에 논 한마지기를 주면서 살림을 내 주셨다.

자신이 가진 열몇마지기의 땅보다는 막내 동생에게 주는 산속 돌밭의 논 한마지기가

더 커 보였나 보다.

 

아버지 바로 위 형이 사고로 죽고 나자

그분이 가진 땅이 동생인 내 아버지에게 갈까봐서 

죽은 동생의 부인까지 다른곳으로 보내 버리고는 제사를 지내 준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제사는 한번도 지내주지 않았다.

성함도 모르는 그분의 산소는 내 아버지가 벌초를 하다가

지금은 내가 벌초를 한다..

 

그래 놓고도 뭘 잘못 했다고,

술만 마시면 내 아버지를 때리던 그 형이라는 분

내게 큰 아버지라고 불렸던 그분은 나중에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말년을 맞았다.

내가 중학교 다닐때 까지도 내 아버지는 그분께 뺨을 맞고 사셨다.

아버지는 "장남은 부모 맞잡이"라고 한번도 원망이나 대 들지 않으셨다.

 

그렇게 없는 살림을 시작한 내 아버지에게 밑천은 지게 밖에 없었다.

170cm가 되지 않는 왜소한 체격이지만 아버지는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셨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 하셨다.

아마 마을에서 농사일을 제일 잘하는 분이셨어리라.

 

자식들 한테는 가난을 대 물림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은 동네사람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셨다.

 

내가 진주로 고등학교를 가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를 미친놈이라고 불렀다.

교육열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던, 지리산 산속의 내 초등학교 동기 열 여섯명중에

중학교를 간 사람은 대여섯밖에 없었고,

고등학교를 간 사람은 그기서도 반 정도 밖에 안 되었다.

국민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남의집 식모로 또는 공장으로 돈벌러 가서

열심히 집으로 송금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 그네들의 눈에는 마을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집에서, 진주까지 유학을

보내는 내 아버지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가면서 아버지의 지게는 더 무거워졌다.

비록 등록금이 싼, 공립 기계공고 지만 시골의 아버지에게는 참 큰 짐이었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내 아버지는 내 앞에서는 숨 가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꽤 공부를 잘했던 내가 집안 형편때문에 인문계를 못가고

공고를 간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나머지 동생들도 아버지의 지게에 올라가기 시작 하면서 아버지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 졌어리라..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지게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가면 숨이 막힌다.

어깨를 파고 드는 멜빵의 고통은 막히는 숨을 잊게 한다.

아버지는 그 지게의 고통을 평생 안고 가셨다.

 

그 지게의 고통을 벗어날때쯤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다.

간다는 이야기도 없이

어떤 언질도 없이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 가셨다.

 

마지막 까지도 자식들의 짐을 지고 가셨다.

자신이 자식들의 지게에 짐이 될듯 해서일까?

그 짐을 당신 스스로 지고 가셨다.

 

내게 한번이라도 당신의 짐을 주셨으면,

한번이라도 지게 없는 홀가분한 인생을 가졌었다면,

내가 조금은 덜 후회 할것인데...

그렇게 급하게 가셨다.

 

지금 시골집에는 지게가 없다.

다른 사람이 가져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보고 싶듯

한번씩 아버지의 지게가 그립다.

 

이제 지게 없는 곳에서 편하게 쉬고 계실 아버지가,

오늘 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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