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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재12

여름 휴가 전에 어떤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살아오면서 제일 시간이 빠른 때가 정년퇴직하는 해라고. 그 말대로 금년 들어서는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심지어는 월급날조차 빨리 돌아온다. 벌써 팔월이다. 금년의 반이 넘게 흘러 간 것이다. 2주간의 긴 휴가도 역시 빠르게 끝났다. 금년의 대부분 일정에는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기휴가 역시 마지막 휴가가 되리라. 큰딸에게 가져다줄 것이 있어서 휴가가 시작된 토요일 일찍 고향을 찾았다. 고향집은 여전히 그자리 그대로다. 주변에 사람들과 환경들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지만 부모님이 살던 고향집은 그대로 세월을 안고 간다. 큰 도로변에는 백일홍이 한창이다. 이 길이 오도재 올라가는 길인데 여기서 대략 1~2km쯤 올라가면 지리산 제일관문 오도재가 나온다. 반.. 2022. 8. 9.
지안재를 바라보며 1년 넘게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부모님이 삼일 연속으로 꿈속에 나오고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고자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창원에서 1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라 마음이 뒤숭숭하거나 힘든일이 있으면 자주 찾는다. 부모님 뒤에 앉아서 지안재를 본다. 부모님들은 저 지안재를 바라보며 검은색 승용차가 한 대씩 올라올 때마다 내 아들인가 하면서 기다리진 않았을까? 어렸을 적 저 지안재에 앉아서 큰길쪽을 바라보며 장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는 장마중을 했던 곳인데 이제 저곳을 보며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신다. 1월 28일에 다녀왔으니 3주밖에 안 된 시간이지만 꽤나 긴 시간인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의 흐름속에 지안재도 많이 변했다. 하나였던 산 가운데를 뚝 잘라서 깎아내린 다음 길을 냈고 꽤 높은 산등성이였던 곳은.. 2022. 2. 14.
월평의 봄날 금요일 저녁 빠르게 퇴근을 해서 함양으로 향한다. 큰애네 집에서 저녁 겸해서 광어회 한 접시에 청주 한 병을 비웠다. 큰애도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 넷이서 하던 일을 두사람이 휴직을 내는 바람에 둘이서 한다고 매일 야근을 하고 있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고 있다. 7월에 인사이동이 있을 때 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 한단다. 공무원들이 놀고 먹는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놀고 먹는놈도 있겠지만 힘들게 일하는 이들도 많다. 2주만에 찾은 오도재 아래 고향마을은 빠른 세월만큼이나 푸르게 변해 있다. 사과밭 은 이제 완전한 초록잎들이 남은 열매를 열심히 키워 나가고 있다. 솎아내기가 끝난 사과나무의 선택받은 열매들은 제법 실하게 컸다. 이런저런 이유로 맺힌 열매의 90% 이상은 선택받지 못해서 제거.. 2021. 5. 16.
산(山)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고향에 간 김에 올라가 본 오도재다. 지난주 만개했던 단풍이 이제 낙엽이 되어 바닥에 쌓여 가고 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앞산이 너무 휑하다. 오도재 주차장에서 함양쪽으로 보이는 아래쪽 산이다. 이곳은 원래 내 어렸을적에 심은 잣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있던 곳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어느때 부터 서서히 산이 망가지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보존하고 있는 듯 싶었는데.. 올해들어서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인간들의 횡포에 산이 우는듯하다. 앞에 보이는 산들은 '큰 정지' '작은 정지'로 불리던 산들로 잣나무가 가득한 곳이었다. 입대 전 20대 초반에도 이곳은 큰 잣나무들이 가득했고 일당 2만 원을 받고 잣나무 옆 풀과 잔나무들을 제거하기도 하던 곳이다... 2020. 11. 14.
추석 금년 추석은 코로나로 인해 어수선한 추석이 될 것 같다. 추석 연휴 첫날 애들은 집에 두고 김여사와 둘이서만 고향길을 나선다. 명절 차례를 부모님 산소에서 지내는 관계로 매년 명절은 고향집에서 보내게 되고 추석엔 동생들 가족까지 함께 어우러져 꽤 시끌벅적한 명절 기분을 내곤 했다. 금년에 코로나로 인해 여동생 가족들도 오지 말고 그냥 각자의 집에서 보내라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큰 딸내미 집에 들러서는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곧바로 고향집을 향했다. 언제나 정겨운 고향마을이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마을 개량 공사로 빈집이 철거되고 예전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은 몇 안 남았지만 언제 가도 반겨줄 것 같은 고향마을이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월평길 77-25 새로 받은 우리 집의 주소다. 예전.. 2020. 10. 6.
홍로가 붉다. 벌초 때문에 금요일 저녁에 고향집에를 갔다. 코로나로 인해 금년 벌초는 한 번에 모여서 하지 않고 각 집안 별로 하기로 해서 사실 걱정이 많았다. 못해도 10상보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다. 다행히 아들내미가 도와준다고 따라나서는 바람에 조금은 위안이 됐지만... 도착해서 보니 큰아버지와 조부무님 산소는 사촌 동생이 다 해놔서 그나마 빨리 끝낼수 있었다. 워낙 아침 일찍 시작하다 보니 오도재 5대조 할아버지 산소를 먼저 하고, 부모님 산소를 하니 10시 정도밖에 안 됐다. 마을 근처에 있는 당할머니 와 당할아버지 당숙산소까지 벌초를 하고 후손이 없이 돌아가신 아버님 바로 위에 큰아버지 산소까지 벌초를 다 마치니 그래도 오전이다. 시간이 남아서 아들래미 운전연습시킨다고 단기 보험까지 들어놓고 왔으니 차를 .. 2020. 9. 7.
오도재와 변강쇠 그리고 옹녀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도재라고 하면 변강쇠와 옹녀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예전에는 전혀 모르던 이야기들이 어느 날 전설이 되어 나타나더라. 추측건대 마천과 조동을 잇는 관통도로가 생기면서부터 이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오도재로 가는 진입로인 조동에서부터 옹녀와 변강쇠 안내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저멀리 지안재가 보인다. 변강쇠 옹녀 묘 입구에 있는 안내판이다. 이곳은 펜션겸, 캠핑장, 카페를 겸하는 개인 사업장이다. 여기는 사실 오십년쯤 전에 이 위쪽 마을인 살구지에 살던 처남과 매형 사이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무서운 곳이어서 우린 잘 안가던 곳이다. 돌아가신 분은 노 포수라고 불리던 매형 되는 분으로 얼굴 기억이 안 나지만, 살인을 저지런 처남 되는 종수 형님이 참 좋은 분이셨는데 교도소 다녀.. 2020. 5. 15.
오도재 가는길 존재감 과시하는 오토바이 떼거리들로 오도재 올라가는 길은 방방방방... 오늘도 쉼 없다. 오토바이떼가 무리로 지나간 길 뒤를 따라서 알록달록 온갖색으로 휘감은 자건거부대가 뒤를 따른다. 힘든 오르막길 주거니 받거니 걸쭉한 농지꺼리에 찌꺼덕 삐거덕 앞사람의 뒤꽁무니를 따른다. 오도재 아래살구지와 실봉 밭기슭에는취나물이 지천인데바쁘게 지나가는 이들에겐여유가 없다. 고무타는 냄새 풍기며 오르던 관광버스는중국산 역병에 밀려 없어졌지만지안재 먼당 노변 커피집은 한 숨 쉬어가는 이들로 비좁은 자리가 만석이고 오도재 아래 거북바위쉼터 주인장 형수님은 오늘도 바쁘다. 2020.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