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떤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살아오면서 제일 시간이 빠른 때가 정년퇴직하는 해라고.
그 말대로 금년 들어서는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심지어는 월급날조차 빨리 돌아온다.
벌써 팔월이다.
금년의 반이 넘게 흘러 간 것이다.
2주간의 긴 휴가도 역시 빠르게 끝났다.
금년의 대부분 일정에는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기휴가 역시 마지막 휴가가 되리라.
큰딸에게 가져다줄 것이 있어서 휴가가 시작된 토요일 일찍 고향을 찾았다.
고향집은 여전히 그자리 그대로다.
주변에 사람들과 환경들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지만
부모님이 살던 고향집은 그대로 세월을 안고 간다.
큰 도로변에는 백일홍이 한창이다.
이 길이 오도재 올라가는 길인데 여기서 대략 1~2km쯤 올라가면
지리산 제일관문 오도재가 나온다.
반대로 앞쪽으로 100m쯤에는 인터넷에 많이 나오는 지안재가 있다.
코로나가 다시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관광버스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오토바이 부대도 왕왕거리고 달린다.
여름 무더위 때문에 숫자는 줄었지만 자전거 동호회원들도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다.
추석이 지나면 이 길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들어찰 것이다.
이길은 농로를 겸하는 길이어서 경운기도 다니고 트랙터도 합류를 하는 길이니
자동차건 오토바이 건 조금씩 속도를 줄여서 다녔으면 좋겠다.
자전거 부대도 길막 하지 말고 가장자리로 붙어서 일열로 다니길 바래본다.
마을 입구에 있는 복숭아 밭에는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금년 휴가가 예전에 비해 5일 정도 빠르다 보니 복숭아도 조금은 늦다.
둘째 주에는 맛이 완전히 들어서 맛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 그루를 심은 황도의 맛이 으뜸이다.
내려올 때는 컨테이너 박스에 한 박스 가득 따다가 주변에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이 복숭아 밭은 팔기 위해서가 아니고 가족들 먹으려고 열댓그루 정도의 나무를 심은 것이다.
우리 남매들도 따다 먹고 동네 사람들도 많이 따다 준다.
또 알게 모르게 손을 타서 없어지는 것도 제법 있다.
작년에는 도로변에서 일하던 할머니들이 왕창 들어가서 손을 대다가 나한테 걸린적도 있다.
그럴경우 핑계는 궁색하게도 "개인 사유지인지 몰랐다"단다.
누가봐도 관리를 한 밭인데....
앞쪽에는 체리나무도 두 그루 심어놨는데 내년쯤에는 정상적으로 많이 열릴 것 같다.
원두막도 동생이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이 원두막은 우리 식구들이 이용할 일은 별로 없다.
대부분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잠시의 쉼터다.
바닥에 콘크리트를 하고 평상을 깔았고 지붕도 다시 이었다.
제발 길다다가 쉬어가는 나그네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를 바래본다.
원두막 바로 앞에는 다리가 있고 다리 밑에는 물이 있어서 시원하다.
그러다 보니 길가던 사람들이 이 원두막을 정부시설로 오해를 한다.
원두막이 깨끗하게 청소까지 되어있다 보니 면사무소나 군청에서 운영하는 시설인 줄 알고는
쉬고 가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그리고 슬금슬금 복숭아에도 손을 자꾸 댄다.
그래서 속좁은 나는 동생에게 보수를 못하게 했었다.
동생 보고 줄이라도 하나 치고 사유지라고 경고 팻말이라도 하나 붙이라 해도
부처인 동생은 그냥 웃고 만다.
"아 그냥 둬요. 쓰레기 내가 치우면 되고 복숭아 몇 개 따 먹으면 어때요.
어차피 우리 식구 다 먹지도 못하는데..."
역시 내 동생은 부처다.
지금은 지안재에 사시는 동네 아저씨가 운동삼아 다니면서 봐주고 계신다.
사과밭에는 사과가 가득이다.
금년 적과시 너무 많이 따 낸 것 아닌가 우려했는데 그런대로 수량이 어느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내려올 때는 홍로가 제법 익은 것이 있어서 세 개를 따다가 부모님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
이 홍로는 추석 전에 따서 대부분 선물용으로 팔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사과가 큰 것은 하나가 1kg이 넘는다.
부사는 아직 한참 크고 있다.
11월 초순경이나 돼야 수확을 하기 때문에 아직도 3개월 정도는 더 커야 한다.
부사는 사과가 많이 날 철에 나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떨어진다.
그래도 사과 중에 최고의 맛은 부사다.
저장도 오래돼서 특별히 냉장 보관을 하지 않더라도 한참 두고 먹을 수 있다.
올해는 제대로 팔아서 동생 살림에 도움이 좀 됐으면 좋겠다.
금요일부터는 4일 내내 비가 내렸다.
사과밭에서 내려다본 아랫마을의 저녁 풍경이다.
비 온 후의 산골 작은 동네가 멋지다.
14일 중 12일을 고향집에 있었다.
날씨가 더워서 또 비가 와서 다른 곳에 나가지는 못하고 그냥 집과 근처를 왔다 갔다 했다.
밥 먹으러 읍내나 인월 정도 나간 것이 외출의 전부다.
아직까지도 고향마을은 그렇게 덥지는 않다.
한낮에도 그늘에는 시원하고 집안에도 선풍기만 돌려도 덥지 않다.
저녁이나 새벽에는 이불을 덮지 않으면 감기가 들 정도로 서늘하다.
그런 고향마을에도 에어컨이 한집씩 들어온다.
기존에 살던 노인네들이야 에어콘 없이 잘 살지만
귀촌을 한 타지 사람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하다 보니
시골 동네 에어컨이 제법 몇 대가 된다.
나 또한 귀향 시 에어컨 설치를 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현재 날씨로 봐서는 에어컨이 구태여 필요 없는데
더 더워지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렇게 한대 두대 에어컨 가동이 늘어나다 보면
이 산골마을도 더워질 것이다.
지금도 에어컨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침부터 계속 돌리고 있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에어컨 냉매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그 몇 배의 열을 발산해야 한다.
그래서 도시의 여름이 더 무더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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