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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18

3 일간의 연휴 광복절을 낀 3일간의 연휴다. 2주간의 휴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냥 집에서 쉴까 하다가 너무 무료할 것 같아서 혼자서 고향집으로 갔가. 일주일 만에 간 고향이라 별 변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생명들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작년에 심은 대추나무도 제법 열매를 맺었다. 여름휴가 때만 해도 콩알만 했던 열매가 제법 엄지손가락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시간의 힘이 대단하다. 금년 봄에 갑자기 나무가 확 크는 바람에 바람에 넘어질까 봐 위쪽에를 많이 잘라냈다. 묘목을 구입할 때는 사과대추라고 했는데 열매를 보니 재래종 같기도 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열매가 더 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생각만큼 안 큰다. 나무가 더 굵어지면 열매도 더 커질지 모르겠다. 같이 심은 피자두는 키가 더 크다. 너무 키가 커.. 2022. 8. 17.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맞긴 하는데 아직까지 복숭아꽃 살구꽃은 피지 않았다. 다른 해보다 며칠은 봄이 빠른 것 같은데 아직 때가 아닌 꽃들도 있다. 지난번에 마무리 짓지 못한 마당 펜스를 마무리하려고 고향집을 찾았다. 이번에는 김여사 없이 혼자만의 홀가분한 외출이다. 진달래는 이미 만개했다. 산마다 진달래 꽃빛이 멀리서도 산을 밝게 한다. 진달래빛은 화려하다. 집 뒤에 산수유도 가득 피었다. 집 뒤에 산수유나무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 옥상에서 보면 바로 보일 위치인데 사람의 무신경이 이렇게 눈을 가린다. 매화꽃이 여기는 이제사 핀다. 창원보다 대략 1주일 정도는 늦는 것 같다. 사과는 이제사 잎이 눈을 뜨고 있다. 한 달쯤 후에는 사과꽃을 또 솎으러 가야 할 판이다.. 2022. 4. 3.
여름 휴가 2021 보름간의 여름휴가가 끝났다. 지리산 산골에는 한낮에는 덥지만 해만 넘어가도 시원하고 새벽에는 이불을 덮지 않으면 춥다. 창원에 돌아오니 집안에 있어도 후덥지근하고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함을 못 느낀다. 금년 휴가는 코로나로 인해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그냥 시골집에서 콕 박혀있었다. 덕분에 드럼과 기타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곳은 물이 많아서 타 지역 사람들이 항상 텐트를 치고 노는 곳인데 가뭄으로 인해 물도 많이 없고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이 없다. 오랜 가뭄으로 물도 많이 없다. 주말쯤에는 한 가족의 텐트가 보이기도 했다. 놀고 간 자리에 뒷정리라도 잘 하면 좋으련만 쓰레기는 그냥 길에 버리고 간다. 관청에서 청소를 하는 줄 알겠지만 동네 사람들이 청소를 한다. 이 아래쪽에 복숭아 밭이 있고.. 2021. 8. 8.
월평의 봄날 금요일 저녁 빠르게 퇴근을 해서 함양으로 향한다. 큰애네 집에서 저녁 겸해서 광어회 한 접시에 청주 한 병을 비웠다. 큰애도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 넷이서 하던 일을 두사람이 휴직을 내는 바람에 둘이서 한다고 매일 야근을 하고 있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고 있다. 7월에 인사이동이 있을 때 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 한단다. 공무원들이 놀고 먹는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놀고 먹는놈도 있겠지만 힘들게 일하는 이들도 많다. 2주만에 찾은 오도재 아래 고향마을은 빠른 세월만큼이나 푸르게 변해 있다. 사과밭 은 이제 완전한 초록잎들이 남은 열매를 열심히 키워 나가고 있다. 솎아내기가 끝난 사과나무의 선택받은 열매들은 제법 실하게 컸다. 이런저런 이유로 맺힌 열매의 90% 이상은 선택받지 못해서 제거.. 2021. 5. 16.
홍로가 붉다. 벌초 때문에 금요일 저녁에 고향집에를 갔다. 코로나로 인해 금년 벌초는 한 번에 모여서 하지 않고 각 집안 별로 하기로 해서 사실 걱정이 많았다. 못해도 10상보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다. 다행히 아들내미가 도와준다고 따라나서는 바람에 조금은 위안이 됐지만... 도착해서 보니 큰아버지와 조부무님 산소는 사촌 동생이 다 해놔서 그나마 빨리 끝낼수 있었다. 워낙 아침 일찍 시작하다 보니 오도재 5대조 할아버지 산소를 먼저 하고, 부모님 산소를 하니 10시 정도밖에 안 됐다. 마을 근처에 있는 당할머니 와 당할아버지 당숙산소까지 벌초를 하고 후손이 없이 돌아가신 아버님 바로 위에 큰아버지 산소까지 벌초를 다 마치니 그래도 오전이다. 시간이 남아서 아들래미 운전연습시킨다고 단기 보험까지 들어놓고 왔으니 차를 .. 2020. 9. 7.
고향집 20여 년 전 다시 지어진 고향집이 마당 보수로 인해서 훤해졌다. 60년 전쯤 부모님은 이곳으로 살림을 나셨고, 그때쯤 또 이 집에서 내가 태어났다. 지금 지은 집은 98년도쯤에 아랫집을 사서 헐고 다시 지은 집이다. 부모님은 이곳에서 채 10년을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래도 스레트집이 아닌 마을에서 제일 좋고, 양옥으로 개량된 좋은집에서 몇 년이라도 살다 가셨으니 다행이라 자위해본다. 집을 지을때 아랫집에서 하도 꼬장을 부려서 마당이 급하게 되는 바람에 평평하지가 않고 비스듬히 돼 있어서 사용이 불편했는데 이번에 동생이 담을 다시 쌓아서 마당을 사용하기 좋게 해 놨다. 사진상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차가 주차되어 있는 뒤쪽 마당이 아주 넓다. 이 집이 있는 덕분에 매년 배 씨들의 벌초도 1박 2일로 .. 2020. 8. 23.
오도재와 변강쇠 그리고 옹녀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도재라고 하면 변강쇠와 옹녀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예전에는 전혀 모르던 이야기들이 어느 날 전설이 되어 나타나더라. 추측건대 마천과 조동을 잇는 관통도로가 생기면서부터 이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오도재로 가는 진입로인 조동에서부터 옹녀와 변강쇠 안내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저멀리 지안재가 보인다. 변강쇠 옹녀 묘 입구에 있는 안내판이다. 이곳은 펜션겸, 캠핑장, 카페를 겸하는 개인 사업장이다. 여기는 사실 오십년쯤 전에 이 위쪽 마을인 살구지에 살던 처남과 매형 사이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무서운 곳이어서 우린 잘 안가던 곳이다. 돌아가신 분은 노 포수라고 불리던 매형 되는 분으로 얼굴 기억이 안 나지만, 살인을 저지런 처남 되는 종수 형님이 참 좋은 분이셨는데 교도소 다녀.. 2020. 5. 15.
지안재 꼬불꼬불 올라간 길끝 가쁜 숨 몰아쉬고 할개미 쪽 저 아래 어디쯤에 내 어머님이 보인다. 머리에 함지박 이고 당신의 인생만큼이나 힘겨운 고갯길 장에 다녀오시는 내 어머님. 함지박에 얹을 짐이라야 무 몇개 감자 몇 개밖에 안 되는 살림살이 그렇게 깡촌의 어머니는 읍내 구경이 그리웠으려니.. 그 어머님 손에 들렸을 몇 개의 과자 봉지를 위해 우린 지안재 먼당에 앉아서 장마중을 했다. 지금은 반으로 내려 깎인 지안재라 그렇게 숨 가쁠 고개도 아니지만 내 어머니의 지안재는 항시 목구멍까지 숨이 차 올랐다. 그 가득한 숨은 산골 아낙의 어쩔 수 없는 삶이려니.... 이제 어머님의 지안재 먼당에서 내가 다시 아래를 보며 누군가를 또 기다린다. 2020.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