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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추석에 미친짓 하기

by 머구리1 2014. 9. 15.

금년 추석은 좀 특별하게 다가 온다.

아들 녀석이 해군에 가는 바람에 우리집 장손 없는 첫 명절이 되고

또 김여사의 힘든 치료 과정이 끝나 가면서 여러가지로 감회에 젖게 하는 명절이 되었다.

 

요즘 이런 저런 일로 힘들어 하는 내게 김여사가 특별한 휴가를 준다.

 

년초에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생기더니

요즘 들어서 그 돌덩이가 자꾸 커져 간다.

 

올해 들어서 이상하게 많은 일들이 꼬여 갔다.

회사일로 한참 동안 힘들게 했는데 아직까지도 혼자 속 앓이를 하고 있고

또 김여사의 건강 문제

또 딸애들의 문제 등등으로 인해 많이 힘든 한해가 되고 있다.

 

김여사가

어차피 같이 산소에 못가니 혼자서 시골에서 휴가를 보내고 오란다.

다 잊고 푹 쉬고 오란다.

때 맞춰서 회사에서도 연차를 사용해서 일주일 내내 쉬자고 한다.

 

나도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여 나 혼자 고향 행을 결정했다.

아마 결혼하고 27년만에 처음으로 혼자서 귀향을 하는것 같다.

물론 혼자 가는 여행도 없었던 만큼 많이 어색하다.

 

김여사의 소망대로 혼자서 힐링의 시간을 가져 보려한다.

이것저것 싸서는 고향길에 오른다.

추석날 성묘 차량이 고속도로 입구를 막고 있지만 급할것이 없으니 맘이 여유롭다.

혼자서 가는 길이 여유를 주는것 같기도 하고..

 

 

지안재!

이곳에 오면 고향이 보인다.

함양읍 조동리와 휴천면 월평리를 경계하는 산에 있는곳으로 사진에 보이는 마을이 함양읍 조동이라는 곳으로

예전에는 순 우리말로 지안 마을이라고 불렀다.

한국에 아름다운길 몇선에 포함된 길인데 전도연이 한국 타이어 광고를 찍어면서 유명재 지더니

지금은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은 다 한번씩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오도재와 헛갈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오도재는 여기서 약 1~2km정도 더 올라가야 하며

오도재는 휴천면 월평리와 마천면 등구를 경계하는 산이다.

 

이곳 지안재에서는 예전에 어렸을적에 이곳에서 장에 가신 어머니를 밤 늦게 기다리던 곳이다.

지금은 길을 내면서 많이 산 중턱을 깍아서 많이 낮아 졌지만, 예전에는 제법 험한 산길이었다.

이곳에 올라서면 내 부모님 산소가 보이면서 고향의 공기를 느낄수 있다.

 

 

 

고향에 오면 항상 맨 먼저 찾는곳이 부모님 산소다.

10년전쯤 추석을 앞뒤로 일년새에 두분이서 그렇게 가셨다.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좀 살만 하니 세상을 떠나셨다.

이곳에 오면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

 

 

 

낮에 시간이 많아서 혼자서 사과밭을 가 봤다.

첫 해여서 아직 사과는 안 달렸지만 대봉감은 엄청 크고 많이 달렸다.

 

지난번에 형수를 위해, 동생이 만든 물가 원두막도 구경해 본다.

물은 조금 줄었지만 잘 지어놨다.

형수 건강을 위해 숲속에다가 만들어놨고

또 바닥도 페인트 칠 하지 않은 원목으로 만들어놨다.

누구나 쉴수 있도록 텐트도 한동 원두막에 올려서 지어 놓고 있었고

전기도 설치를 해놔서 누구던 와서 쉬어갈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위에 아무도 살지않고, 오염원이 없기 때문에 청정 지역으로

물을 그냥 마셔도 괜찮다.

참 좋은 곳에 휴양지를 만들어 놓았다.

내년에는 김여사와 꼭 1박을 해봐야 할것 같은데 멧돼지가 무서운 김여사는

절대 못한단다.

이곳은 멧돼지가 많긴 하다..

 

 

 

 

 

늦은 오후 나만의 축제를 준비한다.

이 집엔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의 공간이고.또 문을 닫으면 웬만한 소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도 20m 이상 떨어져 있으니 시끄럽다고 찾아올 사람도 없다.

어렸을적 60여가구가 넘던 고향 마을은 이제 다 떠나고 남은 인구가 20여명정도나 될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에는 딱이다.

앰프의 볼륨을 높여도 기타 소리가 시끄럽다고 찾아 올 사람도 없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도 노래 못 부른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고..

그냥 미쳐 보는것이다.

하모니카의 음이 안 맞아도...

기타의 코드가 조금 틀려도..

앰프의 하울링이 좀 시끄러워도..

온전하게 나를 위한 시간이다.

어두워 지기전에 마당에서 준비해온 꽃등심을 굽고, 좋은데이와 하이트 맥주로 만든 소맥이

내 위장을 적신다.

적당히 술이 오르고 집안에 들어와서 모든 문을 닫고 혼자서 미쳐본다.

불을 꺼고...

술이 과했는지 기타 코드가 잘 안 잡힌다.

앰프의 하울링도 조절이 안 된다.

그래도 미칠 조건은 충분하다..

 

그런데 왜 눈물이 자꾸 날려고 할까?

즐길려고..

힐링을 한다고 하는 짓이 왜 자꾸 슬퍼지려고 할까?

그렇게 시간은 어둠을 향해서 간다.

 

 

 

 

원래의 계획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이 코스를 걷는 것이다.

대략 52km 거리로 약 12시간을 예상 한다.

출발전에 몇번의 코스를 점검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할수 있을것이라고 여기며....

계획대로라면 아침 6시 출발에 저녁 6시 도착.

내 맘속의 돌덩이를 꺼내기 위해 내 몸을 혹사 시켜 보기로 한 것이다.

참 미련스러운 짓인줄 모르겠지만

때론 단순 무식이 필요할때도 있다.

 

 

 

 

드디어 출발이다.

어제 마신 술로 속이 안 좋지만 그래도 뭘 조금 먹고 출발을 해야 할것 같아서 아침 일찍 라면을 끓였지만 도저히

안 넘어간다.

결국 끓인 라면을 모두 버리고, 빈속으로 출발을 한다.

속이 울렁거린다.

산골의 아침 날씨는 꽤나 차가워서 반팔인 내겐 조금 춥게 느껴진다.

 

고향 집에서 1km쯤 아래에 있는 월평 저수지라는 곳이다.

산과 산 사이를 막아서 하류에 농업 용수를 위한 저수지다.

원래는 이곳 저수지 바닥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스킨 스쿠버를 배웠지만 아직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30분쯤 내려오니 산 넘어로 해가 올라온다.

산골이라서 조금 늦게 올라온다.

출발 시간이 아침 5시50분이니 지금은 6시가 넘었다.

 

 

 

 

금반 초등 학교

4km쯤 아랬쪽에 있는 내 모교다.

찻길이 나기전 예전에 거리가 지금보다는 많이 멀었다.

어린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이곳에 학교를 다녔다.

 

시골의 초등학교가 취학 어린이가 없어서 많이 폐교가 되었는데

모교는 아토피 치료 전문학교로 되어서 아직까지 운영이 되고 있다.

예전에 목조 건물이어서 비가오면 교실 여기저기에 세숫대야를 받쳐놓고

수업을 하면 물방울 소리가 음악이었는데 지금은 신식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다.

학교안에 있는 도담채라는 건물은 타지역에 살고 있는 아토피를 가진 아동들의

부모님들이 살고 있는 살림채다.

먼곳에 살고 있는 부모님들은 이곳에서 자녀와 같이 살수 있다

 

 

 

 

 

휴천면 사무소.

처음 예상했던 속도가 안 나온다.

내리막길에서는 시속6km를 예상 했는데 5km밖에 안 나온다.

 

어제 먹은 술이 과민성 대장을 자극 했는지 아침부터 배탈이다.

몇번이나 화장실을 들락 거린다.

다행히 가는 길 중간 중간에 공중 화장실이 많아서 그런대로 다행이다.

계속 내리막길을 왔더니 고질적이 무릎통증이 온다.

무릎 통증 때문에 무릎 보호대를 했지만 약간은 걱정이다.

 

 

 

아~ 오르막은 싫은데..

이 끝없는 오르막땜에 초반에 진이 다 빠진다.

길을 잘못 들어선것 같다.

이 오르막은 너무 길다....

 

결국은 발목까지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준비한 스프레이 파스로 발목을 식혀가면서 오르막을 넘는다.

 

 

 

 

처음 휴식을 가져본다.

이제 15km 정도 왔나 보다.

사과 한개와 육포 한봉지로 쓰린 속을 달래고

신발을 등산화에서 마라톤화로 갈아 신는다.

 

 

 

 

무슨 차밭 조성터라는데 더 알아볼 여유가 없다.

 

 

 

길가에 예쁜 꽃이 지천으로 널렸다.

생긴건 나팔꽃인데 나팔꽃 색깔이 아닌것 같다..

 

 

 

꽃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이렇게 예쁜데..

 

 

 

첫 이정표가 보인다.

인월까지 24km 남았다.

그럼 16km 정도를 걸었나 보다.

 

 

 

낮은 지리산 자락과 엄천강이 어울린 한폭의 수채화다.

 

 

 

길가 벼들이 가을을 재촉한다.

원래는 노루 새끼가 있어서 찍은 사진인에 안 보인다.

노루 새끼 한마리가 정말 귀여웠는데...

 

 

 

 

송문교에서 내려다 본 엄천강

송문교를 건너서 걸어면 용유담까지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조용한 길을 걸을수 있다.

이곳은 래프팅을 하는 곳으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

일반적으로 래프팅 하면 경호강을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이곳이 훨씬 낫다.

경호강은 강폭이 넗어서 그냥 뱃놀이 수준이지만 이 엄천강은 강폭이 좁아서 제법

급류도 많다.

저 위쪽에 보이는 계곡 위쪽에서 출발을 하는데 비가 오고 난 후에는 조금 위험할정도로

급류가 세다.

엄천강은 인월쪽에서 내려오는 물과 지리산 뱀사골과. 백무동..칠선계곡에서 내려오는물이

합쳐진 강으로 물이 깨끗하다.

 

이 엄천강과 함양읍쪽에서 내려오는 위천수가 합쳐가 경호강의 원 줄기가 된다.

 

 

 

 

용유담..

함양군 휴천면과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소다.

용이 놀던 곳으로 물의 깊이가 명주실 세 타래라고 할 정도로 깊은 곳이다.

물론 그렇게 깊진 않겠지만, 물가에 서면 그래도 발이 저린다.

기암 괴석으로 가득한 이 용유담도 어쩌면 앞으로 못 볼지도 모르겠다.

개발 좋아하는 인간들이 이곳도 아래쪽에 댐을 막는다고 한다.

후손들을 위해서 남겨 놓으면 좋으련만 삽질에 미친 이놈의 정권은

4대강을 망쳐 놓더니 이제 이런 청정 계곡까지 없애려 한다.

문정댐을 만들면 이곳은 수몰 지역으로 바뀐다.

 

 

 

 

 

여기서 부터 마천면이다.

 

작은 정자가 있어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아까 부터 발바닥이 아프다..

양말을 벗어보니..

물집이 잡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다.

체력이나 무릎, 발목 걱정은 했지만, 발바닥 걱정은 안했는데...

아~ 내가 육군 출신이었다면 제일 먼저 발바닥 걱정을 했을건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20km 왔다.

 

 

 

드디어 오도재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갈등을 많이 했다.

여기서 오도재로 올라가면 집에까지 약 10여 km만 더 가면 된다.

물집 잡힌 발바닥이 계속 아프다.

아니 자꾸 더 아파 온다..

발바닥은 오도재로 돌아가라고 하고 마음은 계속 직진이라고 한다..

 

이런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마음 먹은김에 계속 직진이다..

 

 

 

 

발바닥에 신경이 쓰일수록 길은 더 멀어 보이고..통증은 더 심해진다.

저멀리 보이는 지리산도 남의 경치다..

 

 

 

길가에 어름이 있다.

요즘 보기 드문것인데 이곳에는 한가히 매달려있다.

아직 익지 않아서 먹진 못한다.

차타고 다닐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걷는 동안에는 새롭다.

 

 

 

 

마천면 이다.

이곳 갈림길에 오기전 마천 파출소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추석 뒷날이라 식당이 문을 열었을까 걱정을 했는데 딱 한곳이 문을 열었다.

쓰린 속을 달랠겸 국밥 한그릇을 주문한다.

그런데 내 행색이 불쌍해 보였나?

주인 아주머니가 주시는 국밥의 양이 엄청나다.

일반 적인 국밥집의 두배는 될듯하다.

아침부터 굻은 내 배는 이 많은량의 국밥을 다 먹는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백무동을 통해서 지리산을 갈수 있고

또 백무동 가기전에 있는 지리산 휴양림에도 갈수 있다.

백무동은 많이들 알지만 백무동입구에 있는 지리산 휴양림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지리산 휴양림은 시설도 잘 되어있고 물도 차고 맑아서 참 좋은 곳이다.

물론 예약이 어렵겠지만 당일 치기로 다녀 올려면 예약이 필요 없어니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다.

 

 

 

 

여기서 부터 전라북도다.

같은 땅에다가 전라도 경상도를 만들어서 지역간 갈등을 만들더니

지방 자치제를 시행 하면서는 그 지역 감정의 단위가 더 커졌다.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누어서 싸우던것이 군과 군이 싸우고

면과 면이 싸우게 만들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을의 표를 위하여 백성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을 위하여 국민들이 싸우게 만들었다.

유사이래로 가장 쓸모없는 사람들이 정치꾼들인것 같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찾는 사람들...

나라가 어려울때 제일 먼저 도망을 간 사람들이 왕과 대신들이었는데

현대에 와서도 결국은 정치인들은 나라를 망쳐먹고

그 망쳐먹은 나라를 백성들은 또 세운다.

IMF 경제를 만든것은 정치인이었지만 그 것을 다시 세운것은 일반 국민이었다.

 

 

 

 

 

여기서 부터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발바닥 물집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다른 여력이 없었다.

실상사를 지나면서부터는 더 이상 걷는것이 어려워졌다.

그래도 조금씩 쉬면서 계속 걸어 본다.

 

그런데 무릎이나 발목은 조금 쉬었다가 걸어면 좋아지는데

이놈의 물집은 쉬었다가 걸어면 더 심하게 통증이 온다.

 

결국은 산내 마을을 지나고 뱀사골 입구를 지나서는 차를 불렀다.

도저히 더 이상 걸을수가 없다.

 

차를 불러 놓고도 무슨 미련인지 차가 올때까지 계속 조금씩 걸어본다.

땅바닥만 보고 조금씩 걸어간다.

걷는다기 보다는 질질 끌고 간다는 것이 맞을것 같다.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한다.

뭐가 그렇게 섧은지..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세상살이가 뭐라고..

내가 욕심이 과한것인지....

그냥 서럽다.

뭔지 모르지만 그냥 서럽다..

 

결국은 인월 사거리를 4km 남기고 차를 탓다.

오늘 36km를 걸었고,,,8시간이 조금 못 걸렸다.

너무 아쉽지만...

지금은 걸을수가 없다.

 

아~~

내 맘속에 돌덩이는 아직 그대로 있는데.

난 뭘 얻은 것일까?

뭘 얻길 바랬을까?

바보같이

멍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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