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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아버지의 눈물

by 머구리1 2014. 8. 4.

 

제게 아버지라는 단어는, 항상 눈물과 함께 다가 옵니다.

 

오늘이 제 아버님 기일이네요

 

매년 제사 준비를 김여사가 했었는데 올해는 제수씨와 여동생들에게

부탁을 해서 처음으로 김여사가 조금 편한 제사가 될듯 합니다.

 

부모가 살아 계실적에는 잘 해준것만 기억이 나고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못해준것만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저도 별수 없이 안 계신 지금은 제 잘못한 행동들 때문에

많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한번도 효도를 이야기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효도를 못했는데 제 자식에게 효도를 바란다는것이 너무

몰염치 한것 같아서입니다.

 

 

내 기억속에 아버지는 유난히 잔정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눈물을 본것은네번 정도 되는듯 합니다.


맨 처음은 내가 군입대를 할때였습니다.
버스를 탈때까지 아무말씀 없던 아버지께서 버스가 막떠나기전
버스에 올라오셔서는 내게
500원 짜리 솔담배를 손에쥐어 주시고는
잘다녀오라는 말씀만을 남기고 내려가시더군요
..
그때 떠나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아버지께서 손수건으로 눈을
닦는것을 보았습니다
.
애써 태연한 척 하셨지만 아버지께서는 큰아들 군대 보내는것이 못내
서운하셨던 것
겉습니.


두번째 눈물은 여동생이 고등학교 입학할 때였습니다.
중학교에서 공부를 꽤나 잘했던 여동생은 집안형편으로 마산에있는
산업체 부설 야간고등학교에 입학을하게 되었는데 동생을 데려다주고 오셔서
술을 잡숫고는 저녁내내 우셨습니다
.
자신이 못나 딸을 고생 시킨다고 소리내어 우시는 것을 보고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
그아버지는 딸의 졸업식날도 딸에게 부끄럽다며 가지 않으셨습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세 딸을 같은 길을 걷게 하시고는 세번을 더 아파 하셨습니다.


세번째는 내가 군대에있을때 바로밑에 남동생이 아플때였습니다.
그때 신부전증이라는 중병에걸려있던 동생을 진주에있는 종합병원에
입원을 시켰는데
5일만에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니 퇴원을 시키라고
해서 동생을 집으로데려와서는 자식죽는것은 못 보겠어니 같이 죽자며
몇일을 우셨죠
.
그리고 몇일뒤 인명은 재천이니 하는데까지는 해보자며
한약을 구해먹이고 철저한 식이요법을 하여 동생은
2년만에 완쾌될수
있었습니다
.


  2년간 아버지는 동생과 같이 식사를하셨는데  짠 음식을 먹을수
없기 때문에 밥상에는 양념 없는고등어 구이 한 마리와 양배추를 기름에
버무린것 딱두가지 반찬만가지고 아버지는
2년동안 동생과 같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

 

 

다음에 우신것이 동생이 꽤 큰 땅을 산 날 저녁 입니다.

어느날 동생이 시골에 땅 4천평을 샀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님은 당신이 평생을 모은 땅보다 몇배가 큰 땅을 산 둘째 아들을

보고 자신의 인생이 서글프다고 우셨습니다.

투기라는것을 모르고 오직 평생 땅만 파 오신 아버님은 논 여섯 마지기가

전 재산이셨죠.

그날 저녁 이런 5남매를 여기까지 키운 것이 다 아버님 재산이라고 위로 하면서

같이 울고 웃어면서 저녁 늦게 까지 같이 술을 마셨더랬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금은 그 4천평의 땅에서 남은 남매들이 매년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버님의 통곡은 어머님이 돌아가셨을때 입니다.

마지막 숨을 거둔 어머님을 붙잡고 꺼이 꺼이 토해내던 울음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일년 후 더 이상 기다리시지 못하고

어머님 뒤를 찾아 가셨습니다.

멍에처럼 평생을 등짝에서 떨어지지 않던 지게를 일흔이라는 세월에

억지로 벗을수 있었습니다.

어떤이들은 청춘이라고 하는 나이에 자식들이 힘들어 하는것을 보기 싫으셨는지, 어느 누구에게도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채

병원에도 가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가끔씩 아버지를 위해 내가 저렇게 할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힘들것이라고 여깁니다
.


세상모든 아버지들이 그렇겠지만 내 아버지도 자식들에겐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

 

지금 부모님이 살아 계신분들.

미루지 마시고 한번 더 찾아 뵙고 전화 한번 더 드리세요.

 

바쁘다고, 형편이 어렵다고 다음으로 미루다보면

그 다음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 나면 한다는 것이 제일 무책임 한 것입니다.

시간 내서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쉬운 진리를 부모님이 떠나고 나서야 압니다.

 

 

오늘 저녁에는 제상 상 맞은편에 아버님이 어머님 손잡고 꼭 오셔서

상에 있는 음식들 다 드시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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