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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아들의 용돈

by 머구리1 2022. 11. 28.


지난주 금요일
막내인 아들의 첫 월급날이었다.
털털한 사내답게 예쁜 봉투가 아닌 ATM기에서 뽑아놓은 푸른 봉투에
엄마 아빠 각각 오십만 원씩 넣어서 준다.
그것도 공손히도 아닌
"오다가 줏었어요"라는 식으로 소파에 휙 던져주고 간다.

사실 한달치도 아니다.
정확하게 칠일치 월급이다.
남은 것도 없을텐데 그동안 용돈 받았던 누나들에게도 입금을 시켰단다.
시골에 숙모와 삼촌 것도 별도로 준비를 해 뒀단다.
아마 월급 받은 것 마이너스 낫지 싶다.
기특한 녀석.
지 누나들 둘도 첫 월급 받아서는 엄마 아빠 형제간에 인사를 했고
꼭 빼지않고 숙모와 삼촌 봉투도 같이 챙겼다.
이런것은 안 시켜도 잘한다.


아들내미가 얼마 전에 취업을 했다.
그동안 준비해 온 공기업은 아니지만 전부터 기회를 보고 있던 곳이다.
최종 임원면접 합격 소식을 들은 날 그동안의 긴장이 모두 풀렸다.
연봉도 그런대로 괜찮다.
기본연봉만 해도 8년 차공무원인 제 큰누나 보다 천만원 정도는 더 많아 보인다.
아마 성과급에 휴가비까지 별도로 준다니 조금은 더 높지 싶다.
복지도 좋아서 자녀 학자금 백 프로 지급되고,
주택구입자금도 무이자 지원이 꽤 된단다.
본인 배우자, 자녀 병원 치료비 다 내주고,, 부모 처부모 장례비용까지 모두 대 준단다.
일 년에 한 번씩 부부간에 종합검진받게 해 주고.
하기휴가나 연말 휴가도 길다.
우리나라 최 상은 아니겠지만 중상은 되지 싶다.

이 녀석은 항상 마음이 쓰이는 녀석이었다.
위에 두 누나가 유별나게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바람에 사춘기도 못한 녀석이다.
누나들의 길고 험한 사춘기에 지친 엄마가 "너까지 사춘기 하면 엄마는 죽는다"라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사춘기 비슷하게도 못해보고 넘어갔다.

남자들이 가장 대접받을 군대 시기도 엄마의 유방암 발병과 함께했다.
훈련소 마치고, 실무배치를 받아서 갈 때쯤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고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집에는 버선발로 반겨줄 엄마 대신
항암으로 머리가 하나도 없이 몰골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다 죽어가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매 휴가 시마다 나와 소주나 한잔 마시면서 혼자 있을 땐, 라면 끓여먹고 귀대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자기가 엄마 밥상 차려줘야 했다.
남들은 딸 둘에 하나 있는 아들이라 귀한 아들이라 이야기 하지만 집안에서는
귀하게 크지 못했다.
지금도 혼자서 음식 잘해 먹고, 집안 설거지 혼자 다 한다.


대학 졸업 후
난 처음 출발이 중요하니 일이 년 늦어도 네 마음에 드는 직장을 얻어라고 조언을 했다.
조급한 마음에 아무 곳이나 취업을 하게 되면 계속해서 이직을 하게 된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길 원한 부모의 마음이었다.
군무원 시험에 한번 응시했으나 백 대 일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에 공무원 월급보다 못한
보수를 보고 그대로 포기했다.
다름 해부터 준비한 공기업 준비.
같이 닥친 코로나.
첫 일 년은 공기업이 채용이 전부 닫혀버렸다.
다음 해에도 일부 열리긴 했지만 1년간 밀린 취준생에 좁아진 문 때문에 서울에
좋은 대학 나온 친구들이 다 차지해 버린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에 사기업이지만 원하는 곳에서 모집이 있었고 응시를 했고 합격이 됐다.
서류전형, 인적성검사, 실무면접, 임원면접, 신체검사, 매 단계마다 부모인 나도 같이 긴장했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세상을 다 산 것 같았다.
아내와 셋이서 기분 좋은 축하주를 마셨다.


이제 한 달 후면 난 퇴직을 한다.
그동안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돌덩이 하나를 걷어내고서 가볍게 나선다.
차도 새로 한대 계약을 넣어놨다.
내 차는 아들내미 줘서 한삼 년 더 타게 해야겠다.
한 삼년 타면 자기돈으로 그냥 쓸만한 차 한 대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귀향 준비를 한다.
세 녀석이 다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맘 편히 내 인생을 즐기고 싶다.

20년 전부터 가족들에게 선포했었다.
"정년퇴직까지는가족들을 위해서 산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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