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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살아가는 이야기(1997)

by 머구리1 2003. 1. 14.

살아가는 이야기.....
배 석 현


7월 9일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너거 어머이 생일인데 올 수 있겠나?”
“아부지요 회사가 바빠서 안 되겠는데요”
“그래 항상 바뿐기 존기다”

7월 20일
“내일 큰 아부지 제사에 같이 좀 가자이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에도 혼자 같디
내가 영 미안 터라“
“아부지요 회사가 바빠요...”
“그래 바뿌재...”

9월 12일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벌초하는데 올 수 있겠나”
“바빠서요”
아버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9월 21일
고향 불알친구들의 곗날입니다
밤 열두 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야 임마 니한테 시간 맞춘다고 계속 늦추다가 니가 된다고 해서 오늘 날 잡았는데
안 오면 우짜노 니는 머가 만날 그리 바뿌노. 떼리 치와라 씨팔“

10월 19일
시골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주 일요일에 시제 지내는데 이번에는 좀 내려와라이
벌초 하로도 않왔다고 너거 사촌들이 말이 많더라 너는 장남이다 아이가“
“아부지 회사에 일이 있어서 안 되겠는데요”
“무신놈의 회사가 만날 바뿌노”
아버지는 전화를 딱 끊어 십니다

10월 27일
아내의 생일입니다
지난밤 철야를 했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잠만 잤습니다
아무 투정도 하지않는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11월 8일
둘째 딸의 생일입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한 번 더 약속을 합니다
“오늘은 꼭 네시에 마치고 오꾸마”
네시에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도저히 않되겠다 여섯 시에 들어가께”
빌어먹을
여섯시에 또 전화를 했습니다
“일곱 시 반 까지는 있어야 되겠다”
여덟시 반에 전화가 왔습니다
“다슬이가 자꾸 잠 이온 다고 해서 우리끼리 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이소”
차라리 아내가 욕을 했으면 좋았겠습니다
퇴근 후 곤히 잠든 딸아이를 괜히 한번 안아 봅니다

11월 9일
새벽같이 일어난 작은 딸은 인사를 합니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오늘은 고등학교 동기들을 집으로 초대 했습니다
고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두 놈이 어떻게 연락이 되어서
9년 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빌어먹을 갑자기 베어링 클리어란스가 안 나온답니다
철야를 해야 될 폼입니다
급하게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야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않되겠다 다음에 만나자”
철야도 하지 않았습니다

11월10일
또 공시는 이틀이 연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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