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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

by 머구리1 2022. 4. 11.

 

토요일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가 생기고 처음이니 2년은 훌쩍 넘었고, 그전 모임일까지 감안하면 대략 3년 만인 것 같다.

금년에 밀양에 멋진 집을 지은 친구 집에서 집들이 겸해서 얼굴 한 번 보자 했고

다행히 친구들이 모두 참석해 주었다.

울밀선(울산-밀양 자동차 전용국도) 건너에 있는 천왕산과 재약산이 마주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다.

평생 총무겸 회장인 이 친구가 너무 알뜰해서 코로나 전에도 1년에 한 번씩 밖에

안 모이다보니 회비도 한 이천만원정 도는 모아 놓은 것 같다.

몇명 안 되는 인원에 비해 모아놓은 회비가 많고,

또 어떤 모임이던지 회비가 너무 많으면 사단이 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던터라

금년부터는 회비를 내지 말자 해서 지금은 회비를 내지 않는다.

 

이 모임을 만든 것은 내가 총각시절이니 대강 봐도 35년 정도는 됐지 싶다.

그 당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던 고등학교 같은 반 출신들이 몇 명 있어서 모임을 만들었고,

뒤에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던 친구도 둘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지금의 모임이 됐다.

꽤 오래된 모임이다.

공업고등학교의 특징이 대부분 1학년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반이 바뀌지 않는다.

자기 전공을 가지고 입학을 하기 때문에 입학할 때 배정받은 반에서 그대로

졸업까지 하게 되고, 보통 담임선생님도 계속 한분이 맡아서 한다.

우리도 1학년 2학기때 반편성을 하고 나서는 계속해서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었다.

우리반 담임선생님이었던 염장영 선생님도 계속해서 담임을 해서

졸업 후에도 몇번 찾아 갔었지만 나의 관심부족으로 지금은 어디 계신지도 모른다.

아마 진주에 있는 친구들중에는 아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영어 선생님이었던 이 분은 3년간 한번도 매를 들지 않으셨다.

그러면서도 그 거친 공고 애들이 우리반에서는 한명도 정학이나 퇴학등

징계를 받지 않았다.

그당시 기준으로 보면 참 대단한 분이시다.

 

세월이 흘러 나이들이 들다 보니 사는 환경도 다르고 사는 방식들도 다르다.

수도권으로 발령을 받아서간 친구는 금년 10월에 며느리를 본다고 한다.

이 친구는 부인이 부동산 재테크를 잘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다.

원래는 모두 지난해 퇴직을 해야 했겠지만 나처럼 호적이 늦게 실린 사람들이 있어

아직까지 현역인 친구들도 있고,

정상적으로 퇴직을 한 친구는 시골 생활을 하거나,

아직까지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지내고 있었다.

나 또한 내년에 닥칠 일이기에 관심이 많이 갔다.

 

아들 둘을 다 의사를 만든 대단한 친구는 고물상을 하고 있다.

이 친구도 집안형편이 여유가 없다보니 애들이 모두 학자금 대출로 졸업을 했다.

사이좋게 큰아들은 내과 작은 아들은 외과전문의가 되었고

한녀석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한 녀석은 군의관으로 재직중이다.

이 친구 또한 자신이 애들에게 해 준것이 없으니

대접받을 생각이 십원어치도 없단다.

이 친구의 부인만 코로나 확진자로 참석을 못했고

다른 친구의 부인들은 모두 참석을 했다.

친구끼리 처남 매제 사이가 된 사람도 있다보니

오빠와 여동생 올케언니가 같이 계모임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된 친구도 있고, 곧 할아버지가 될 친구도 있다.

아직까지 자식들이 결혼 계획이 없는 친구는 나 외에도 한 명이 더 있어서

서로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96세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친구아내는 결국 저녁만 먹고 돌아갔다.

심하진 않지만 약간의 치매끼가 있는 아흔이 넘은 할머니 혼자 두기에는 불안한 모양이다.

결혼 하자마자 모시기 시작한 시어머니는 아직까지 건강하시니

몇년간은 더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

전에 몇번 뵈었지만 혼자되신 기간이 길고 워낙 건강하셔서 백수는 넉넉하지 싶다.

이 친구는 친구들 중에서 결혼을 제일 먼저 했는데 혼사도 제일 먼저 치뤄서

외할아버지가 되었다.

오빠겸 처남의 위치에 있는 친구는 10여년 전쯤에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기도 했으나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잘 하고있다.

운전도 할 수 있고, 뛰는 것은 힘들지만 걷는 것도 잘 하고

약간 어눌하긴 하지만 대화도 가능하다.

처음에 병원에서 봤을때는 거의 식물인간 정도여서

살아나도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하다고 다들 걱정했었다.

 

친구 집 뒷산에서 처음 보는 부짓깽이 나물이라는 것도 뜯어봤다.

촌놈이지만 처음보는 나물이었고

맛은 취나물과 비슷했다.

고사리도 통통하게 많이 올라와 있어서 고향집 고사리도 궁금해졌다.

이곳보다 한 일주일은 느리니 다음주 쯤에는 고향산에도 여기저기

나물꾼들이 많이 돌아다닐 것 같다.

제발 담배불 조심하고, 쓰레기 버리지 말고, 남의 사유재산 훔쳐가지 말길 바란다.

 

오랜만의 모임이다 보니 또 과음으로 고생을 사서 한다.

몸은 60대인데 마음은 20대다 보니 그까지 소주 두병, 그까짓 소주 3병 하다 보니

삼겹살도 아닌 백숙을 안주삼아 과음을 하게 되고 다음날까지 속이 흔들린다.

내년 귀촌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술부터 끊어야 할 것 같다.

시골 생활에 술을 가까이 하게 되면 한잔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술 취한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술을 줄인다는 것은 끊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담배 끊듯이 그냥 한방에 끊어야 되지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니 당겨서 고민을 할 일은 아니니 일단 미뤄놓는다.

 

집주인인 친구 부부의 고생으로 재미있는 1박 2일이 되었다.

이제 즐기며 가야 될 시절이 되었으니 그렇게 살아가자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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