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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by 머구리1 2022. 7. 15.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독한 남성 혐오주의자 강민주의 이야기다.

작가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의 남성 혐오를 강민주에게 입혀 놓았다.

물론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라는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섯 살짜리가 칼을 들어서 아빠를 죽이고 싶어 하는 설정은 조금 심한 듯하다.

"소설이니까" 하고 만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남자는 악이 아니면 바보다.

뒷골목의 유명한 건달인 남기조차 강민주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그의 눈치를 봐야 하는 노예일 뿐이다.

작가 후기에서 갑자기 찾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달라는

늙은 할머니 독자의 개인사를 듣고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1992년도에 나온 소설이니 그 당시 환경으로는

여권이 많이 약하던 시절이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때도 폭력 남편만 있던 것은 아니다.

그 시절에 꽃뱀도 있었다.

소설은 유명 영화배우로서 세상 여자들의 짝사랑의 대명사인 백승하를

납치해서 포장된 그의 가면을 벗기려는 시도로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사건들로 짜여있다.

이해가 안 가는 전개들도 있고 중간쯤 읽으면 대략 종말이 예상되기도 한다.

내가 촉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예상한 대로 소설은 끝이 났다.

과한 남성 혐오 외에는 읽을만한 이야기다.

재미있고 몰입도도 높다.

지금까지 읽은 양귀자 작가의 다른 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똑같은 구절이 있었다.

언론에서 사회 지도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인 재벌 또는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을 언론은 사회 지도층이라고 부른다.

물론 언론인이나 교수, 의사들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그들이 사회 지도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사회 상류층 일지는 모르지만 사회 지도층은 아니다.

그냥 부자나 권력층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맞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를 지도할 도덕성도 없고, 그들에게서 지도를 받고 싶은 국민도 별로 없다.

그냥 돈 많고 빽 좋은 상류층일 뿐이다.

그들이 사회지도층의 자격도 없을뿐더러 붙여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말에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것이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영 비위가 상한다.

단언하건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인사는 있을지언정 사회를 지도하는 인사는 없다.

대단찮은 학식이나, 상업주의 언론에 이름을 팔은 속된 명성으로 자신을 지도층 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는 가장 혐오한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주인공인 강민주의 남성 혐오에 대한 정도를 볼 수 있는 글들이다.

 

-. 욕설과 일상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남자들은 미개인이다.

  그들은 여태도 동물에서 진화과정을 끝내지 못한 아직 많은 부분

  수성(獸性:야수성)이 남아있는 야만인이다.

 

-.  강간범보다 더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남편이다.

 

-.  남자가, 이미 검은 발톱을 드러낸 남자가 뜻밖에 회개하는 경우는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절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남자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면 가증스럽게도 다시 여자 마음을 얻어

  기대 보려는 것이 남자들이란 족속이다.

  검은 발톱은 부러진 것이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게다가 발톱은 다시 자란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특히 남자는 여자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른다.

  알고 있더라도 실천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 남자다.

 

-.  그리고 여기 황홀한 비극이 있다. 역시 삶이란 이름의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희극에는 결코 황홀함이 없다. 희극이 허용하는 감정 이동은 페이소스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그러나 비극에는 오르가즘이 있다. 비극만이 절정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절정이 없는 비극은 눈물의 배설에 도움을 줄 뿐 황홀함의 경지로 우리를 데려다주지 않는다.

  천박한 비극이라면 우리는 이미 신물  나게 보아왔고 겪어왔다.

  그것들은 때로 희극적이기조차 해서 누구의 눈물도 얻지 못하는 수가 많다.

  비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비극 말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맞춰, 비극을 상연하는 무대의 커튼은 스르르 위로 말려 올라간다.

  죽음만이 그 커튼을 다시 내릴 수 있는 지겨운 공연, 앙코로도 받을 수 없는 단 한 번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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