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 가는 이야기

땡초

by 머구리1 2022. 11. 18.

아침에 갑자기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매운 음식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일이 있다..

 

20년 전쯤 이야기다.

오리지널 경상도 촌놈 셋이서 교육을 간 적이 있다.

오리지널 경상도 촌놈이란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경상도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2박 3일짜리 교육이었지 싶다.

첫날 교육을 마치고 저녁 겸 소주 한잔을 위해 삼겹살 집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계천 근처였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해서 매운 고추만 먹는다.

일반 풋고추는 풋냄새가 나서 못 먹는다.

맛있다는 아삭이 고추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가 나오고 채소가 나오는데 일반 고추가 나왔다.

 

우리: 사장님 여기 땡초 좀 주세요.

사장님: 예 뭐요?.

우리: 땡초요.

사장님:그게 뭔데요?

우리:아 매운 고추요.

사장님:아 청양고추요.

우리:아니 청양고추 말고 땡초요.

사장님:????

우리:아 쪼맨하고 매운 고추 있잖아요?

사장님:그래 청양고추요.

우리:아 청양고추 말고 땡초요.

사장님:땡초는 없어요.

그렇게 5분 이상을 실랑이를 했다.

 

우리:저 옆에 있는것 땡초 아니에요?

사장님:저건 청양고추예요.

우리: 일단 가져와 보세요.

사장님이 고추를 들고 왔다.

우리:그래 이거요. 이게 땡초잖아요.

사장님:이건 청양고춘데요.

 

우린 그때까지 청양고추가 고추 품종 중 한 가지의 이름인 줄 알았다.

그리고 땡초가 표준말인 줄 알았다.

우리 동네에선 땡초가 표준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경상도에서 청양고추란 말은 잘 쓰지 않았다.

우린 촌놈이란 걸 숨기려고 최대한 사투리도 덜 사용했는데...

언제나 부끄러움은 남은자의 몫이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소주만 열심히 퍼 마셨다.

 

지금은 청양고추도 알고, 아삭이 고추도 안다.

땡초 김밥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봐서는 서울 사람들도

이젠 땡초를 아는 것 같다.

그래도 이 동네에선 아직 청양고추라고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땡초라고 부른다.

 

요즘 고추는 품종개량이 많이 되어서 고추밭에 가면

고추 하나가 오이만큼이나 크다.

그렇지만 풋고추로서의 맛은 별로다.

예전에 껍질 얇고 맛있는 매운맛이 나는 작은 토종 풋고추가 그립다.

한여름 식은 밥 한 덩이 찬물에 말아서 된장에 찍어먹던

그 토종고추가 지금은 참 귀하다.

'살아 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포석재 애기불  (2) 2022.11.25
이것도 나이라고...  (4) 2022.11.22
집 수리 마무리  (7) 2022.11.15
공짜  (8) 2022.11.14
가을걷이  (4)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