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올라간 고향집에서 책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참 오래된 추억이다.
마지막 근무지에서 받은 전역 기념패.
사실 난 이 패를 받지 못할 뻔했다.
군대 전역을 하면 누구나 한 개씩은 받는 전역 기념패지만
난 마지막 근무지가 국군통합병원이었기 때문에 해군에는 소속이 없었다.
말년에 너무 많이 마신 술 때문에 급성 간염이 걸려서 통합병원 신세를
석 달 보름간 졌었다.
내 블로그의 다른 카테고리인 '해군하사 이야기'에 내 군대 추억을 적어놨지만
해군들은 타군들에 비해서 술을 많이 마신다.
뱃놈이라는 특수성에 기혼자들도 출동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술들을 많이 마신다.
특히 부사관들이 더 많이 마신다.
나도 영외거주 시절에 술을 많이 마셨다.
오버홀이라고 해서 3년에 한 번 정도 진해에 들어가서 엔진을 완전히 들어내서
수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수리기간이 석 달이나 넉 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니나노다.
특히 기혼자들은 오랜만에 가족과 석 달 이상을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아한다.
미혼 부사관들의 경우는 그 긴 시간에 퇴근 후 할 일이 없으니 그냥 술집에서 보낸다.
진해 시내에 여관방 하나 얻어놓고 저녁마다 술을 마신다.
3년간 재형저축 넣었던 것을 석 달만에 술값으로 날린다.
참 멍청한 짓인데 그때는 그게 멋진 줄 알았다.
그렇게 석 달을 마시고 나서 울산으로 복귀를 했는데 눈이 노래지고
오줌도 노래지고 사람이 깔아진다.
급하게 울산에 병원을 갔더니 급성간염이란다.
간염의 경우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이 복무가 안 된다.
바로 부산 통합병원으로 입원했다.
그때가 87년도 2월쯤 됐지 싶다.
제대 말년이다.
단기하사의 의무복무 기간이 4년 6개월이었으니 내 전역일이 원래는
87년 5월 31일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으니 전역일이 넘어간 것이다.
부산 통합병원은 정형외과 전문병원이어서 난 다시 대전 통합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대전 통합병원이 간 전문 병원이다.
석 달 보름정도 입원했는데도 낫지를 않아서 그냥 퇴원을 했다.
전역일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퇴원 후 서울 해군본부로 갔더니 그곳에서는 여기 왜 왔냐고 한다.
니미럴 그럼 어디로 가라고..
다행히 후반기 교육 때 소대장 하시던 분이 주임상사를 하고 있었다.
그분께
아직 간염치료 중이어서 다름 사람들과 같이 단체 급식을 못한다고 했더니
바로 죽이는 조치를 해 준다.
한 달간 휴가 가서 쉬고 있다가 전역 일주일 전에 부산사령부로 가란다.
한달간 쉬고 부산에 부대로 출근을 하니 내 소속이 없다.
전역 일주일 남은 놈을 받아줄 부서가 없는 것이다.
그냥 놀다가 예전 근무지인 울산에 갔더니 저 패를 준비해 놨더라.
이미 떠난 사람이니 안 해줘도 되는데 남은 사람들이 고맙게도 준비를 해뒀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참 인복은 있다.
그것도 간부라고 플라스틱이 아닌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다.
고속정인 저 배를 3년 반을 탔다.
입대를 82년도 12월에 해서 일 년 후인 83년도 12월에 저 배를 타서
전역할 때까지 탄 것이다.
사실 고속정은 3년 이상 못 타게 되어있다.
진동이 심하고 안에 공기가 안 좋기 때문에 장기간 타면 관절 이나
폐에 이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장기가 못 태우게 한다.
대부분 2년 안에 발령이 난다.
그런데 장교들이 계속 나를 인계를 하는 바람에 발령이 못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계속 군대생활 할 생각이 아니어서 그대로 있었던 것도 있고.
이것 가지고 3년 타고나서 부산 해역사 부두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이번에 집 수리하면서 찾아냈는데
참 반가웠다.
만들어 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로도 그렇게 버려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다시 깨끗하게 씻어서 내 놀이방에 모셔두었다.
삼십오 년 전에 추억인데 참 반갑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 군대 꿈을 꾼다.
긴급출항 사이렌 소리가 아직도 꿈속에서 들린다.
더 웃기는 것은 꿈속에서 그들도 나도 내가 전역한 것을 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