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퇴직하고는 처음 읽는 책이다.
하는 일 없이 놀면서도 이상하게 그동안 책에 손이 가질 않았다.
둘째가 사준 책은 몇 권이 기다리고 있는데 읽을 마음이 없었다.
이제 또 한권씩 읽어봐야겠다.
가부장적[家父長的]
가장이 가족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가녀장이란 뜻을 알기 위해 찾아본 가부장이란 말의 뜻이다.
이 책은 블로그 이웃의 후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이슬아 작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도 하다.
92년 생이니 이제 서른 넘어가는 나이인데 열 권이 넘는 책을 냈다니
대단한 다작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은 작가의 주변 이야기를 배경으로 쓴 것 같다.
엄마와 아빠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주인공의 이름도
작가 본인의 이름을 썼으며 배경조차도 작가의 현 배경을 그대로 썼다.
처음 몇 장을 읽고 든 생각은 "작가가 페니니스트인가?"였다.
남자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녀장이라는 소설 제목에서 암시하듯 모든 것이 여자가 앞이다.
아마 가부장이라는 말에 가진 반감이 아닐까 한다.
부모대신 모부라고 쓰고, 아들딸 대신 딸아들이라는 표현을 한다.
물론 그런 표현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집의 구조도 자신이 최상위 지배자라는 구조다.
성공한 서른의 작가인 슬아는 자신이 건물을 사서 출판사로 만들고는
자신의 부모를 모두 직원으로 둔다.
당연히 집안의 가장인 자신은 부모 위에 군림할 수 있으며
아빠와 맞담배를 피울 수도 있고 집안 아무 곳에서나 흡연을 할 수 있지만
피 고용인인 자신의 아빠는 절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가족이라는 위치보다는 경제력에 의해서 권력도 주어지는 것이다.
웹소설 같은 가벼움도 있고, 통통 튀는 맛도 있다.
"안방은(부모가 거주하는) 지하에 위치해 있다.
낮잠 출판사의 맨 아래층이다.
맨 위층에는 슬아의 고풍스러운 서재와 침실이 있다.
그 아래층엔 출판사 관리 사무실이 있고 더 아래엔 슬아의 옷방이 있다.
복희와 웅의 공간은 가장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슬아의 공간들에 비해 어딘가 남루하다.
언젠가 웅이는 영화 [기생충]을 보다가 가시감을 느끼고선 중얼거렸다.
'우리집 구조랑 똑같네'
.... 이 집의 가장인 슬아는 집안 어디서나 실내 흡연을 한다.
.... 아빠인 웅이 역시 흡연자이지만 집 밖에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
실내에서 흡연할 권리에 대한 의사 결정권은 오직 슬아에게만 있다."
정규직인 엄마는 계약직인 아빠의 두 배의 월급을 받는다.
즉 가부장이 못 되는 아빠는 제일 하급이다.
심지어 고양이 남희 숙희보다 아래다.
소설에서 남자는 좀 무능력하고 대접받으려고만 하는 존재고
여자들은 희생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대상인 것 같다.
그것을 깨 부순 것이 작가 자신이다.
소설의 초반부에 나오는 대사다.
"역시 성공한 애(작가)는 달라"
"우리(부모)는 테레비나 보자"
이는 포기일 수도 있고, 비아냥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겠지만 내게는 썩 편하게 읽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미 꼰대가 됐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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