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따갑던 여름 햇살도
세상의 종말처럼 폭우를 쏟아붓던 장마도
시간의 힘에 밀려 가을에 자리를 비켜준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다.
지리산 아래 산골 마을은 벌써 새벽에 춥다.
새벽에는 한번씩 보일러도 돌린다.
햇살이 아까워서 이불이라도 말려본다.
강한 햇살을 본 이불은 뽀송뽀송
기분 좋은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
장미는 끝없이 새꽃을 피운다.
얘는 언제까지 꽃이 필지 모르겠다.
아직도 계속 꽃망울 매단 새순이 나온다.
뒤안 옥잠화도 꽃이 핀다.
고향 마을에서는 지부초라고 불렀는데
꽃은 처음 본다.
상사화도 이제 끝물이다.
옥잠화와 상사화 제비붓꽃이 같이 피었다.
제비붓꽃도 꽃 피는 기간이 길다.
7 월부터 꽃이 핀 것 같은데 아직도
꽃이 핀다.
엄청 많은 꽃망울이 대기하고 있다가
하나가 지면 또 하나가 피는 식으로
계속해서 꽃을 이어간다.
생명력도 강해서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고 번식력도 좋다.
시간의 힘에 밀려서 서서히 계절은
바껴가고 생명들은 또 다시
다음을 준비할 것이다.
그 많은 변화속에 나만 준비를
안 하는 것 같다.
2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