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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초심

by 머구리1 2020. 8. 10.

初志一貫(초지일관)

처음에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감.

 

 

작년 1월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면서 모든 보직을 떼고 현장으로 내려오면서 

혹시 처음 가진 마음이 변할까 봐 내 책상 앞에 두었던 실천 훈이었다.

쉬운 듯하면서도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한 달간 계속된 장맛비로 금년 휴가는 고향집에 짐을 푼 후 근처만 왔다 갔다 했다.

덕분에 그동안 맛있다고 생각했던 식당들을 대부분 재방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들은 예전과 변함없이 맛이나 친절도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한 곳만은 그렇지 못해서 참 안타까웠다.

 

첫 번째 간 곳이 냉면집 꿀꿀이와 숯불

여전히 손님이 많고 복잡하다.

냉면 맛도 여전하고, 맛있는 갈비의 맛도 여전했다.

직원들이나 사장님의 친절도 좋았고

휴가 기간 동안 두 번을 갔지만 갈 때마다  기분 좋게 먹고 나온다.

 

인월에 마당쇠도 여전했다.

여자 사장님은 바뀌었지만 영양밥과 내가 좋아하는 육개장도 최고였다.

이 집에서 밥을 먹으면 항상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밑반찬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약간 들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좋다.

이 집은 이번엔 한 번밖에 못 갔다.

 

처음 가 본 함양 횟집 청정해역

난 회를 판단할 때 항상 광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내가 광어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광어회가 주인의 솜씨에 의해서

어떻게까지 맛이 변하는지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창원의 어느 횟집에는 광어회 한 접시에 십오만 원 하는 곳이 있는데

전혀 비싸다고 생각되지가 않아서 뒤로도 몇 번을 더 갔다.

광어를 얇게 포 뜨서 꽃 모양으로 말아서 내 오는데 그 맛과 식감이 일품이다.

딸내미가 한번 줄돔을 시켜준 적도 있지만 내 입에는 광어만 못했다.

이 집에서 술 한잔 할 요량으로 처음으로 광어 큰 거(6만 원)를 시켰는데 양도 많고

맛도 좋아서 다음날 다시 시켜서 먹었다.

옆집에 5만 원짜리와 비교가 안 되게 맛있었다.

 

만월식당의 국수와 보리밥 비빔밥

변함없이 맛있다.

내가 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여기저기 국숫집을 많이 다니지만 국수를 이 집 같이 맛있게 하는 집을 못 봤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게 한다.

문제는 양이 너무 많고, 가격이 너무 싸다는 것.

아무리 자기 가게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가격이 되어야 유지가 될 텐데

16년 전에 처음 갔을 때 3,500원 하던 국수와 4,000원짜리 비빔밥은

아직도 값이 그대론데 양 또한 너무 많아서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한 그릇 다 먹기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남기려니 미안하고...

주인아주머니의 함양 특유의 사투리도 정겹고....

이 집은 값을 조금 더 올려서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문화예술회관 옆의 천사화로구이 국밥과 삼겹살도 여전히 좋다.

 

제일 아쉬운 집이 청학산이었다.

이 집은 고향집에서 2km도 안 되게 가깝고 예전 추억도 많은 곳이라 자주 가던 곳이다.

처음에 갔을 때는 정말 좋았다.

예전 한옥을 그대로 유지한 인테리어도 좋고, 산나물 위주의 밑반찬들,

정성이 묻은 고기류와 생선류도 좋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아마 다시는 갈 일이 없을 듯하다.

 

점심에 여동생 부부와 밥을 먹으러 갔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입구로 갔더니 주인아주머니와 서빙하시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다.

 

그대로 읊어보면

나 :예약을 안 하고 왔는데 자리 있나요?

주인 :몰라요.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세요.(짜증이 잔뜩 들어있다)

  (엥?, 주인이 모르면 누구에게 물어보라고...

    안에 들어가서 서빙하는 분한테 다시 불어보니)

서빙 아주머니 :저기 아무 곳에나 앉으세요.

그냥 아무곳에나 앉았다.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할 사람은 없고 손님은 많았으니.....

 

밥을 웬만큼 먹었을 때쯤

두부 김치를 먹었더니 맛이 별로다.

그냥 내 입맛에 안 맞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좀 있다가 매제가 이상하단다.

두부가 상한 것 같단다.

나도 맛이 이상했던 터라, 두부의 냄새를 맡아보니 못 먹을 수준으로 상한 냄새가 심하다.

옆에 손님 상에도 두부가 나왔길래 먹지 마라고 했다.

그 손님들도 냄새를 맡더니 숟가락을 놓는다.

그러고 보니 밑반찬으로 나오는 나물류나 전류도 예전에 것이 아니었다.

 

서빙하는 아주머니를 불러서, 두부가 상한 것 같으니 팔지 말라고 했다.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급하게 주방으로 가더니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하더라.

(두 분이서 하는 얘기가 다 들린다)

서빙 아주머니 :두부 올리지 마라.

주인아주머니 :왜?

서빙 아주머니 :맛이 갔단다.

주인아주머니 :맛이 갔어? 안에서 그러더나?

서빙 아주머니 :

그러고 끝이다.

 

그러면 최소한도 사장이 들어와서 사과라도 할 줄 알았다.

두부야 워낙 잘 상하는 음식이고

날 덥고 습도 높은 여름철이니 그럴 수 있다처도....

그런 음식을 먹은 손님에게는 최소한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계산을 끝마치고 나올 때 까지도 사장님은 한마디도 없었고 

매제가 한 소리 하려는 것을 그냥 두라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이었으면 한 마디 하고 나왔겠지만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인 고향이다 보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전에 백종원 씨가 골목식당에 나와서 한 말이 생각났다.

"손님은 맛없다, 안 좋다 는 얘기 안 한다, 그냥 다음에 안 올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제는  TV 출연이었던 것 같다.

허영만 화백이 진행하는 식객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단다.

난 개인적으로 TV 프로그램에 나온 식당들은 잘 가지 않는다.

많은 식당들이 TV 출연 후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초심을 잃고 맛도 잃기 때문이다.

 

이곳도 TV 출연이 독이 될 듯하다.

며칠간 지나면서 보니 여전히 주차장엔 차가 많았다.

빨리 초심을 찾지 못하면 저 주차장에 가득한 차들이 금세 빌 것이다.

능력 밖으로 갑자기 늘어나 손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손님이 늘면 직원도 늘어야 하는데, 손님은 몇 배가 늘었지만 직원수는 그대로다.

직원의 월급이 아까운 사장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요식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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