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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기억들...

by 머구리1 2022. 1. 4.

어제 아침 금년 실천훈을 액자에 넣으면서 보니

지난시절 실천훈들이 액자에 같이 포개져있었다.

사무실을 옮기면서 앞에 것들은 없어진 것 같고

2014년도 부터만 끼워져 있다.

 

매년 년초가 되면 직상생활 하면서 가고싶은 방향들을 적어서

액자에 넣어서는 책상 앞에 두었었다.

그대로 완전하게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책상 앞에 두면

자신에 대한 다짐도 되고

또 다른 면으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구속도 된다.

대부분이 전년도 회사 생활이 기본에 깔려있을 것이다.

 

 

13년도에 공장을 이동하면서 업무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회사 쪽이나 부하 사원이라 부르는 조직원들에게도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회사나 사람에 대해 실망도 많이 했던 해이다.

결국 그래봐야 바뀌는 것은 없고 나만 피곤하니

그냥 조금은 맘을 놓자고 했던 것 같다.

 

 

14년도는 이제껏 살면서 제일 힘든  한 해였다.

아내가 암에 걸려서 그 치료과정이 제일 힘들었다.

암환자의 고통스러운 항암치료 과정은 겪어보지 못한 이는 모른다.

공무원 준비하던 큰 딸은 1차 시험을 합격했지만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해 처음으로 도입된 1차에서 필요인원의 120%를 합격시킨 후 면접에서

떨어뜨리는 방식인데 그 탈락의 2명 중에 내 큰 딸이 있었다.

군대 간 아들은 희한하게 그곳만은 피했으면 하는 곳으로만 발령이 났다.

해군에 간 아들은 직별 받을 때 병기병만 아니면 된다고 했더니 병기병이 되었다.

후반기 교육 후 2함대만 아니면 다 괜찮다고 했더니 2함대로 발령이 났다.

마지막으로 00함만 아니면 좋겠다고 했더니 

마치 해군본부에서 알고 있었다는 듯 00함으로 발령이 났다.

난 그때 정말 해군본부에 나와 원한 가진 사람이 근무를 하는지 알았다.

 

회사에서는 또 다른 문제로 최악의 한해였다.

여기저기 업무적으로 인간관계로 부딪히면서 싸움닭이 되었고

지금까지 회사생활하면서 제일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노동조합과도 싸우고 있었다.

급기야는 공황장애까지 와서 상담까지 받았었다.

이것 때문에 추석에 혼자서 고향에 올라가서

부모님 산소에서 눈물도 흘려보고 저녁내내 술에 취하기도 했었다.

몸을 혹사시켜서 잊어보기 위해서 하루 종일 걸어보자 해서

국도길 50여 km를 걸어보자 했으나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40km 조금 넘게 걷고는 차에 실려왔었다.

살면서 가장 힘든 한 해였다.

 

 

14년도 그렇게 힘들던 삶이 조금씩 풀려가고 있던 15년도다.

항암이 끝난 김여사는 방사선과 호르몬 치료로 넘어가면서 많이 편해졌다.

큰딸은 다시 시험을 쳐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해서 가장 빨리 발령을 받았고

또 다른 걱정이었던 아들은 진해의 섬으로 2차 발령을 받아서 왔다.

15년 말에는 회사에서는 부서이동을 하였다.

20년간 해오던 생산부서 감독자 자리가 너무 힘들어서 보직해제를 요청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생각해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간접부서 관리자 자리를 맡아달라고 하였다.

이제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몇 번을 고사하였지만

계속된 요청에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또 다른 짐을 지게 되었다.

감독자와 관리자의 역할이 많이 다르고 

직접생산부서와 간접지원부서의 업무가 다르니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제일 힘든 것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Excel이었고

덕분에 지금도 그때 배운 Excel을 잘 써먹고 있다.

부서이동을 하면서 보직을 못 뗀 것을 회사 탓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적었던 것 같다.

 

부서를 이동해서 보니 이곳은 또 다른 문제들이 있었다.

간접부서가 몸이 조금 편한 곳이다 보니

회사에 흔히 꼴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일하기 싫고 불평불만 많은 사람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노동조합에서 방구꽤나 뀐다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일하기 싫어하니 조용히 있으라고

회사에서는 몸이 편한 간접부서로 많이 보낸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조직이다 보니 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다.

그래서 나를 여기로 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현장 관리감독자에 비하면 나도 편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많이 받겠지만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또 다른 세상들이 보이기도 한다.

 

 

일이 많이 편해지면서 나 스스로 나태해졌던 것 같고.

보직을 가지는 마지막 해이니 한번 더 마음을 다잡은 것 같다.

회사 규정상 임금피크에 들어가면 모든 보직을 뗀다.

 

 

 

임금피크 첫해다.

임금피크 들어가면서 처음에 내가 원했던 곳으로 가면서 나 스스로 다짐했던 것들이 있었다.

행여 근무 중 초심이 흔들릴까 봐 처음 마음을 계속 가져가자고 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런대로 잘 지켜졌다.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고 싶었다.

보직을 떼고 내려왔지만 주변에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고

후배지만 직책상 내 상사인 사람들에게도 잔소리를 하게 된다.

또 내 스스로 판단한 기준에 따라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꼭 내가 옳은 것이 아닌데 도 나만 옳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환갑을 맞이하는 해다 보니 사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것이 옳은 삶인지이 대해서

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들이 많아진다.

임금 피크에 들어가니 회사생활은 정말 편했다.

임금은 줄어들지만 사람관리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아마 40년 넘은 직장생활 중 제일 편한 시간들이지 싶다.

 

 

 

그리고 마지막 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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