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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머구리1 2022. 1. 11.

요즘 둘째 덕분에 책을 많이 읽는다.

전에도 책을 좋아했었다.

그러다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잘 안 보게 됐다.

작년 말부터 둘째가 사서 보내는 책 덕분에 갑자기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데미안'은 두 번째 보는 책이지만 여전히 난해해서 지금도 

작가의 생각이나 소설의 의미들이 썩 와닿지는 않는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역사적인 몇몇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얘기들이나 배경들이 재미있었다.

황현필의 '이순신의 바다'를 읽다 보면 

이순신이라는 사람의 고뇌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조선 최고의 무능한 임금이라는 선조의 등신짓이나

원균 같은 이들의 행동을 통해서 어리석은 임금이나

벼슬아치들이 얼마나 쉽게 나라를 망해 먹는지도 알게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유대인 이면서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 이라는 사람이

2차 대전 중 독일 유대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사람들의 일상을

정신과적인 시점에서 바라본 느낌을 적은 책이다.

번역도 우리나라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가 해서

정신과의 참고서나 교과서 같은 느낌도 있다.

가스실에 나날이 동료들이 실려 들어가는 현실

매일 계속되는 강제노역과 폭행 그리고 배고픔.

이런 희망 없는 현실에서 느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

그들을 바라보는 정신과 의사의 눈이다.

강제 수용소의 잔인한 모습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그런 것은 별로 없다.

 

나중에 생각이 날지 몰라서 지금 남아있는 내용을 대략적으로라도 적어 놓는다.

 

카포: 어느 때는 나치 대원보다 카포들이 수감자들에게 더 잔인했다.

   카포는 같은 유태인이다.

카포라는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들 중에서 수감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뽑아놓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더 폭행을 잔인하게 한단다.

일본 식민지 시절 고문을 일삼던 악질 형사들도 대부분 조선인이었다.

원래 권력이 없던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더 잔인해진다고 했다.

 

-수용자가 되면 이름이나 직업이 없어지고 수감 번호만 남게 된다.

 수용자 신분이 되면 그 사람이 수감 전에 뭘 했던지 상관없이

 이름을 없애고 신분도 없애서 그냥 똑같은 수감자로 만든다고 한다.

 아마 스스로 더 비참해지라고 그런 것 같다.

 

-고참 수감자가 스냅스 한잔을 사기 위해서 백금이나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을 팔아서 몇천 마르크를  사용한다.

  그 보석은 신참 수용자들에게 뺏은 것이다.

신참 수용자들이 입소를 하면 옷을 모두 벗겨서 줄 무의 수용복 하나만 주는데

  그 과정에서 몸에 지닌 모든 보석이나 개인이 소유한 보석이나 현금 등을

  고참 수감자들이 뺏는다.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의 몸에 있던 것들도 이들 차지다.

  그런데 그 귀한 보석들은 술 한잔을 사기 위해서 독일인 감시병들에게 판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술 한잔 값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가 있다.

  며칠간 잠을 못 자도 죽지 않는다.

  불면증 환자가 없어진다.

  이빨을 닦지 않고 심각한 비타민 결핍이 있었지만 잇몸은 건강했다.

  목욕을 하지 않고 흙투성이로 살았지만 상처가 곪지는 않았다.

  내복이나 양말 없이 영하 16도에서 살았지만 동상이나 저체온을 죽지 않았다.

자신의 의학을 배울 때 인간은 며칠 이상 잠을 못 자면 죽는다고 배웠다고 한다.

 또 이런저런 환경이 되면 인간은 병이 오고 저체온으로 죽게 된다고 배웠지만

 극한의 환경에서는 이 의학상식이 안 맞더라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생명력이 훨씬 질기더란다.

 

-심한 절망이 자살을 막는다.

 가스실을 보면서 자살의 충동에서 벗어난다.

희망이 없는 삶에서는 자살의 충동을 느낄 것 같지만 

  아주 심한 절망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이 없더란다.

  매일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내일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살을 안 한단다.

-한 사람이 숨을 거두자 체온이 식기도 전에 시신 곁으로 다가가서는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 먹던 지저분한 감자를 뺏어 갔다.

  다음 사람은 시신이 신고 있던 나무 신발을 벗겨 간다.

  세 번째 사람은 외투를 가져가고 다른 사람은 새 구두끈을 갖게 됐다고 좋아했다.

 

가장 잔인해 보이는 글이었다.

  몇시간 전까지 자신의 동료였던 사람이 죽었는데 

  먹건 감자를 가져가고, 신발을 벗겨가고, 아무것도 아닌 구두끈을 가져가며서

  좋아하더란다.

  죽은 사람에 대한 얘도 같은 것은 애당초 없더란다.

  그들이 모두 같은 유대인이고

  그들 중에는 많이 배운 사람도 있었지만 똑 같더란다.

 

 

-처참한 환경의 수용소에서 구타나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은 분노을 일으킨다.

그 처참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나치 감시자들의 인격에 대한 모멸은

  분노을 일으킨단다.

  매일 반복되는 폭행에 대한 분노보다 모멸감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죽음을 앞둔 수용소에서도 정치에 관한 얘기는 시도 때도 없이 나온다.

  죽음 앞에서도 예배나 종교인 행사는 하더라.

  주문을 외우며 심령을 부르는 미신행위를 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내일 생존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수시로 나오고

  유일신을 믿고 선민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는 주술사의 행위 비슷한 미신스러운 짓도 한단다.

  결국 인간세상에서 정치와 종교는 없어질 수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아무런 희망이 없어서 그런 것에 더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신발이 맞지 않아서 눈길을 맨발로 고통스럽게 걸어가는 동료를 보면서도

  주머니에 숨겨놓은 빵조각을 신나게 먹었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정신과 의사씩이나 되지만 신발이 얼어서 발에 맞지 않은 동료가

  강제노동을 하기 위해서 맨발로 눈길을 걸어가고 있으면서

  고통에 눈물을 짓지만

  저자 자신은 아침에 호주머니에  숨겨놓은 빵을

  아주 신나게 먹고 있더란다.

  극단적인 인성의 상실이겠지.

 

-참혹한 현실에서도 해지는 풍경을 보면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라면 감탄한다.

-수용소에도 예술과 유머는 있었다.

극한의 수용소에서도 저녁 일몰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감탄하고

  수용소 내에서도 예술과 유머는 있어서

  이것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닌가 한다.

 

 

-정상적인 유대인이었지만 극한에 상황에 빠지자 인육을 먹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실제로 죽은 이의 인육을 먹는 사람이 있었단다.

  같이 독일인에게 잡혀온 유대인이지만...

 

-수용소 생활에서 가장 절망적인 것은 끝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희망이 끊어지면 사람은 죽는다.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시작까지 사망자 수가 일찍이 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증가했다.

  기후변화, 굶주림, 가혹한 노동조건, 전염병 때문이 아닌

  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희망이다.

그 희망이 없어졌을 때 사람은 죽는다.

 

-인간 군상들

 1. 수용자들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 쾌감을 느끼는 감시병도 있다.

    -수용자들이 쬐는 난로를 엎어버리는 그들의 눈빛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2. 대다수 감시병들은 점점 심해지는 야만적인 행위로 보면서 감정이 메말라 있었고

    정서적으로 메말라버린 감시병들은 다른 가학적인 폭력을 하는 사람들을 말리지도 않는다.

 3. 감시병 중에서는 수용자들을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같은 수감자 신분인 고참 관리인은 어떤 나치 대원보다 더 지독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책을 읽고 나서 참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이렇게 고통받았던 유대인들이

지금은 반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들이 받은 고통만큼이나 더 잔인하게 죽인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피해자가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어있는 현실이 아프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존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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