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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이순신의 바다

by 머구리1 2022. 1. 18.

 

이순신의 바다  -황현필-

  부제:그 바다는 무엇을 삼켰나.

얼마 전에 영국의 해군 제독 한 사람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찾아서 경례를 한 것이 뉴스를 탄 적이 있다.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할 수 있겟지만 한국의 이순신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도고 헤이하치로(청일전쟁과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전쟁 영웅)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봤다.

조선왕조에 대한 강의중에 임진왜란에 관한 강의가 몇 번 있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 출신인데 지금은 유튜브 한국사 강사로 유명하다.

나이가 들면서 한국사나 세계사등 역사강의가 재미있어졌다.

사건들의 이면에 있는 감춰진 사실들이 재미있고

아프카니스탄이 개판이 된 과정과 강대국들이 번번이 나가떨어지는

환경들에 관심이 갔다.

 

이순신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 임진왜란의 영웅

-. 거북선

-. 난중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 330:13의 승리-명량해전(실제로는 330:1이 맞겠지만)

-. 패가없는 전쟁의 신(23전 23승)

-. 2번의 백의종군

 

 

책을 읽으면서 이순신 장군으로 감정이입이 돼서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최고의 찌질이 겸 최악의 군주와 

나라의 안녕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영화에만 관심이 있는 벼슬아치들.

그리고 원균.

조선 최악의 임금과 최고의 장군이 한 시대에 있었다는 게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순신은 전쟁 후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임금에 대한 충성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백성과 나라의 안위만 걱정해서 목숨을 바친 것 아닐까?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하루아침에 파직을 당하고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을 면회하기 위해서 올라오던 모친이 돌아가시고

초상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전장으로 나가면서

선조에 대한 마음을 접었으리라.

해서 2번째 백의종군 후에는 망궐례[望闕禮]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망궐례라는 것이 외지에 있는 관리들이 왕이 있는 궁궐 방향으로 절을 올리는 것인데

이것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을 봐서는 더 이상 선조를 군주로 인정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아들인 광해군까지도 질투의 대상이었던 선조였으니

당시 전쟁영웅으로 인기 최고였던 이순신에 대한 질투가 오죽했으랴.

결국 선쟁이 끝나면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까지

어떤 죄목으로던 역어서 죽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순신은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불사한 전쟁을 치르지 않았을까?

그럼으로서 나머지 사람들을 살렸다.

결국 이순신의 예상은 맞았다.

전쟁 후 논공행상에서 자신을 따라서 피란길에 앞장섰던 벼슬아치들과

심지어는 내시들에게까지 공신 등록을 해준 선조는

의병들이나 전쟁영웅들에게는 공신등록 대신 죄를 물은 경우도 많았다.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만약 이순신이

임진왜란 전에 전라좌수사가 아니라 경상 우수사였다면

왜군은 육지에 상륙 못했을 수도 있다.

 

더 웃기는 건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은 원균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라는 걸 후손들이 하는 모양이다.

사당을 세우고 원균 미화를 시작한 것이다.

충신의 후손은 못살고

비겁자의 후손은 잘사는

우리나라의 종특을 비켜가지 못하고,

이순신의 후손들은 가난하고

원균의 후손들은 부자기 때문이다.

그 후손 중에 국회의원까지 나왔으니 오죽하랴.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하고 친일 매국노의 후손은

부자로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을 언제까지 봐야 할지.

 

당시 같은 시간을 살았던 삼인방의 삶이다.

1. 이순신

-. 1545: 출생

-. 1576: 무과 급제-32세

-. 1579: 2월 훈련원 봉사--10월 충청병사--10 군관-35

-. 1580: 7월 발포 수군만호(종 4품)--36세

-. 1582: 1월 파직 5월 훈련원 봉사--38

-. 1583: 함경도 건원보 권관-부친 별세-39세

-. 1586: 탈상 함경도 조산보 만호-42

-. 1587: 만포진 만호로 오랑캐를 무찔렀으나 절도사 이일의 무고로 백의종군-43

-. 1589: 정읍현감(종 6품)-45세

-. 1590:7월 고사리 첨수, 8월 만포진 수군 첨사(종 3품)-46세

-. 1591: 2월 진도군수(정 4품) 임명.부임 전에 가리포 첨사(종 3품) 임명 후.

           부임 전에 전라좌수사(정 3품:함대사령관) 임명.

           3월에 왜적이 올 것을 알 고 거북선 만듦.-47세

-. 1592: 임진왜란 발생(4/13), 옥포(5/7), 당포, (6/2) 한산도(7/8), 부산 앞바다(9/1)-48세

-. 1593:삼도수군통제사(종 2품:해군참모총장) 임명-49

-. 1594~1596 임시 휴전

-. 1597: 투옥(3/4), 석방2번째 백의종군(4/1), 7월에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 후,

             8월에 삼도수군통제사 임영(정 3품), 명령 해전(10월)-53세

             같은 해 자신의 투옥지로 면회를 오던 모친 별세..

              즉 해군참모 총장에 복직을 시키면서도 대장이(종 2품) 아닌

              함대사령관과(정3품) 계급이 같은 소장을 달아줌.

-. 1598: 노량해전에서 전사(음력 11/19)-54세

 

2. 거북선

-. 크기:길이 34.2mx폭 10.3mx높이 6.4

-. 무장:양현에 6개의 포 포트로 최대 26대의 대표로 무장.

-. 철제 침이 설치된 지붕

-. 내부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내부를 볼수 없는 구조.

-. 노 젖는 사람이 80명 있고 양쪽에8개의 노로 운행

-. 평시에는 돛을 함께 사용 가능

-. 1592년 4월 12일에 완성되었고 다음날 일본 침공.

 

3. 원균(1540~1592)

-.  이순신 보다 5살 많음.

-. 1564년 무과에 합격했으나 응시자격 미달로 박탈(부친의 부정)

-. 1567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합격

-. 1591년 전라좌수사.

-. 임진왜란 개전 시 경상우수사였던(함대 사령관) 원균은 싸워보지도 않고

   자신이 타고 도망갈 판옥선 1척만 남기고 나머지 판옥선을 모두 자침 시키고 도망을 감.

-. 전투에서도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고 적의 수급 거두는 일에만 몰두함.

-. 모함을 하여 이순신을 파직 및 투옥시키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됨.

-. 통제사가 된 후 첫 전투인 칠천량 해전에서 판옥선 12척을 남기고 전멸됨..

-. 12척도 배설이 도망가면서 남긴 것임

-. 칠천량:판옥선 134척 중124척 파괴 및 침몰. 12척은 배설이 가지고 도망감.

                           거북선 3척 침몰 수군10,000명 전사.

-. 패배 후 혼자서 도망감.

-. 전쟁 후 정식 재판으로 처형됐다는 설도 있음.

 

 

4. 선조

-. 조선 최악의 임금

-. 1592.4.13 (선조 25) 임진왜란 발발

-. 5.2 한양 입성(20일 만에 서울 도착),6.15 평양 점령

-. 4.30 새벽 빤스 런,  5.1 개성도착

   명나라로 도망가려 했으나 명나라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의주에서 멈춤.

-. 빤스 런 중이던 6월14일 분조를 실시, 자신은 요동으로 도망가면서 세자(광해군:18)를 강계로 보내서 나라를 맡김.

    *분조:조정을 2곳으로 분리함.(즉 세자가 나라 안에서 임금 권한대행이 됨.)

-. 분조 후 광해군은 의병을 모으고 도망갔던 장수들도 재 집결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게 됨.

    ->선조의 질투 시작

-. 자신의 권력에 위해가 될까 두려워 분조된 광해군을 따르던 공이 있는 장수 및 의병장들을 벌함.

-. 이순신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까 봐 파직함.

-. 이순신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지만 원균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감싸 안는다.

-. 공을 세운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함.

 

5. 일본이 잘 못 판단한 것.

-. 선조가 그렇게 빨리 도망칠 줄 몰랐다

  ->일본의 전쟁은 군주가 항복을 하면 그 백성은 그냥 승자의 백성이 되는 방식이어서

     선조만 잡으면 전쟁이 끝날 줄 알았고, 선조가 그렇게 빨리 백성을 버리고 

     도망갈 줄 몰랐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20일도 안 걸려서 도착했는데 선조는 벌써 토끼고 없었다.

-. 민초들이 저항할 것을 몰랐다.

  ->일본의 전쟁은 군주와 군인들만의 전쟁이다.

  ->백성들은 군주가 누가 되던 상관없다.

-. 이순신을 몰랐다.

  ->일본은 애시당초 해군력이 강한 나라다.

  ->그런데도 바다에서는 박살이 나고 육지에서는 완승을 거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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