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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불편한 편의점

by 머구리1 2022. 2. 23.

둘째가 또 책을 보냈다.

지난번에 사서 보낸 책 중에서 마지막 읽은 홍창진 신부의

'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를 다 읽어 갈쯤 새로운 책 다섯 권이 도착했다.

이번 책은 내가 선택한 책들로 소설들이다.

둘째 덕분에 올해 책은 많이 읽을 것 같다.

 

그중에서 첫번째로 집어 든 것이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이다.

김호연 작가는 사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냥 인터넷에 베스트 셀러를 검색했는데 

소설 부분에 이 책의 이름이 처음으로 올라와 있었다.

이번에는 맘 편하게 그냥 소설을 읽고자 했다.

 

별 기대 안하고 읽다가 마지막이 다 되어 갈 쯤에는

남은 페이지 수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흔한 신파극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우리들의 삶인 것 같았다.

역시 한국 소설이 감정 이입도 쉽고 이해도 쉽다.

외국 소설을 읽으려면 이름 외우는데 신경이 너무 많이 간다.

 

'불편한 편의점'은 김호연 작가의 21년도 작품으로 현실의 우리쯤 될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서울의 다른 곳보다 조금 뒤쳐져서 가고 있다는

청파동의 편의점 'ALWAYS'.

모두가 주인공일 수도 있고, 독고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주인공이 누구면 어떤가?

어차피 모든 삶에 주인공은 자기 자신인데.

 

이야기는 친척의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지갑을 잃어버린 엄영숙 여사와 그 지갑을 찾아 준 독고의 인연으로 시작한다.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청파동이 어디쯤인지 궁금해서

카카오 지도를 찾아보기도 했다.

난 경상도 촌놈이라 서울을 통 모른다.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동네가 청파동이었다.

 

불편한 편의점 이라는 연극의 주인공들이다.

주인공들을 보면 대략의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1. 엄영숙 여사: 52년생으로 중등학교 역사 선생님 출신의 편의점 사장으로

         대기업에 잘 다니다가 다 때려치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때 돈 잘벌다가 욕심에 쫄딱 망한 골치 아픈 백수 아들과,

         똑똑하고 돈 잘버는 딸 부부가 있다.

         돈을 벌려고 편의점을 한다기보다 편의점이 망하면 직원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는

         착한 사마리아 인의 정신으로 편의점을 운영한다.

 

2. 오선숙 여사: 사장 염영숙의 같은 교회 후배

                  이해 못할 것 같은 남편은 이혼을 하려했으나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지 애비를 꼭 닮은 백수 아들이 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라는 주의로 사람보다는 개를 믿는다.

 

3. 시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편의점 알바

            난 시현에게서 자꾸 내 아들이 보였다.

 

4. 독고: 영숙의 읽어버린 지갑을 찾아준 기억을 잃어버린 노숙자.

 

5. 경만: 마흔넷의 흙수저의 대표적인 표상

           작은 중소기업의 만년 영업맨.

           회사가 어려워 연봉도 동결이고 추석 상여금도 없지만 사장의 차는 고급으로 바뀐다.

           단군이래 경기는 단 한 번도 좋아진 적이 없고 회사는 언제나 힘들다.

          나도 이게 참 신기하다.

          TV에서는 매년 경기가 안 좋다고 하고

          회사는 매년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GDP나 GNP는 매년 올라가고 있고 

          재벌들의 영업이익도 매년 엄청나게 높다.

          매년 경기가 안 좋은데 우리나라는 세계 9대 경제 대국이 되어있다.

 

6. 인경: 배우를 하다가 얼떨결에 희곡을 써서 입선이 된 어중간한 작가.

           실제로 이책을 쓴 김호연 작가로 보인다.

 

7. 민식: 염영숙 여사의 골치 아픈 40살의 아들

          머리가 좋지 않아 명문대를 못 가고 지방 캠프스 출신으로

          사업으로 일시적으로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결국은 다 까먹고, 엄마의 편의점을 사업 밑천으로 노린다.

 

8. 곽: 전직 형사 출신으로 독고의 정체를 캐려다 참 교육당한다.

        자식들의 악기 레슨 비용 때문에 뇌물을 받고 파면된 경찰.

 

9. 황: 아파트 경비를 하는 곽의 친구

 

처음 제목을 보고는 '약간은 마음이 불편한 소설이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부분도 가끔 있다.

중간에 가슴을 찢는 대사도 있긴 하지만 현실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하는 '황'을 보고 '곽'이 하는 외침이다.

     "이놈아. 우리같이 돈도 힘도 없는 노인들은 발언권이 없는 거야.

     성공이 왜 좋은 줄 아냐?

     발언권을 가지는 거라고. 성공한 노인들 봐. 일흔이 넘어도 정치하고 경영하고,

     응! 떠들어도 밑에 젊은 놈들이 경청한다고.

     개들 자식들도 충성하고 , 근데 우린 아냐. 우린 망했잖아.

     그런데 떠들긴 뭘 떠들어!"

금수저 은수저가 아닌 흙수저들의 노후 모습이다.

우리들의 노년의 모습일 수도 있다.

왜 늙으면 입 닫고 지갑을 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사다.

늙어가는 사람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거기에 답하는 '황'의 대사는 광화문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광화문에서 애국이라고 태극기 흔드는 노인네들이 이 심정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든다.

자신들을, 자신들의 희생을, 자신들의 애국을, 자신들의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는 젊은 놈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데

보여 줄 것이 없는 노인들.

그런 노인들에게 판이 깔린 것이다.

      "씨발. 그래. 인정. 망했지. 못났고.... 그럼 못난 놈들끼리 떠들면 되잖아.

      광화문 나가서 다 함께 말이야!..

      이번 주말에 광화문 나가서 신나게 소리나 한번 질러보자."

 

예전에 어느 분이 강연에서 그랬다.

"군복 입고 태극기 흔들고 다니는 그분들 이해해 주자.

오죽 긍지를 가질 게 없으면 군복에라도 긍지를 가지려고 하겠는가.

이해해 주자."

그 뒤로는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군복입고 빨간명찰 달고

바지 지퍼 풀고 다니는 술취한 노인네들 봐도

화가 나지않고 그냥 그러려니 한다.

 

현실이지만 우리들을 씁쓸하게 만드는 대사도 있다.

기억을 찾은 독고의 말이다.

우리가 흔히 기득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법을 만들어 피해 가는가 가 보인다.

법 기술자에 판, 검사, 변호사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도 법 기술자다.

그리고 모든 기득권은 법 기술자들과 친하다.

이제 정치도 법 기술자들이 장악을 하려한다.

대리수술을 하다가 사람이 죽었지만 의사면허는 취소되지 않았다.

   " 이 나라에서는 사람을 죽이거나 성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볼사조 면허'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의료 기술자가 법 기술자들과 친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그걸 믿고 우리는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그런 끔찍한 특권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다 보니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착각한 건지 모르겠다."

 

작가는 결국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산해진미 도시락과 옥수수수염차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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