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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채식주의자

by 머구리1 2022. 2. 24.

 

이번엔 '채식주의자'다

저녁 밥상에서 반찬 골라먹듯 한 권씩 책을 선택해서 읽는 맛도 괜찮다.

뉴욕 타임스2016년도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

맨부커상 수상.

 

70년 생인 작가 한강은 10권이 넘는 소설과 산문집을 냈고 

만해 문학상, 이상 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한국소설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화려하고 유명한 작가지만 난 모르는 작가였다.

사실 근래에 책을 안 읽다 보니 아는 작가가 별로 없다.

한강 작가에겐 미안할 이야기지만 몇 년 전에 이 소설이 한창 뉴스에 나오고 할 때

난 한강이 책 이름인줄 알았고 환경보호 관련 책인줄 알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책 제목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소설이라는데,

그리고 대단한 평론가들의 호평일색인데

문학적 수준이 낮고 이해도도 떨어지는 내가 봐서는

"뭐지?" 

"무슨말을 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대단한 작품을 읽었지만 내겐 그 뭔가가 보이지를 않는다.

 

 

이 소설은 구성이 특이하다.

세 개의 중편소설 형태로 되어있으면서 세 개의 소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장편 소설이 되었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영혜 남편의 입장에서 쓴 '채식주의자'

영혜의 형부 입장에서 본 '몽고반점'

영혜 언니 인혜의 입장에서 본 '나무 불꽃'으로 구성되어있다'

 

 

소설은 남편의 입장에서 먼저 시작된다.

지극히 평범한 부부 그냥 나라고 해도 될 부부.

꿈에 커다랗고 시뻘건 수백 개의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막대기에 매달려 있는 헛간을 본 아내의 꿈으로 인해

냉장고에 보관된 고기를 모두 버려 버리고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아내와의 갈등으로 시작된 소설은

끝을 알 수 없는 파멸로 달려간다.

그런데 채식주의자가 되는 동기가 아무리 봐도 미약하다.

결국 영혜는 거식증과 함께 미친 사람이 되어가고.

그 파멸을 향한,

채식주의를 선택한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

영혜는 미쳐가는데 그 미쳐가는 이유를 못찾겠는 것이다.

단지 유추할 수 있는 정도의 동기라면

영혜의 어렸을 적 기억으로 생각되는 어떤 잔인한 사건뿐이다.

 

어렸을 적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키우던 개를 오토바이로 종일 끌고 다니다가

동네 사람들이 같이 잡아먹는 것을 본 것 밖에 없다.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어...

개도 붉은 혓바닥을 턱까지 늘어뜨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어. 나보다 몸집이 큰  잘생긴 개야.

주인집 딸을 물어뜯기 전까진 영리하다고 동네에 소문났던 녀석이었지.

아버지는 녀석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이면서 두들겨패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도 함께 달려. 동네를 두 바퀴, 세 바퀴, 같은 길로 돌아.

나는 꼼짝 않고 문간에 서서 점점 지쳐가는, 헐떡이며 눈을 희번덕이는 흰둥이를 보고 있어.

번쩍이는 녀석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난 더욱 눈을 부릅 떠.

나쁜 놈의 개. 나를 물어?

다섯 바퀴를 돌자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

줄에 걸린 목에서 피가 흘러. 목이 아파 낑낑대며,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 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일곱 바퀴째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그날 저녁 우리 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시장 골목의 알 만한 아저씨들이 다 모였어.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 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다 먹었어.

들깨 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리고 이 대사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를 암시하는 것일까?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 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영혜의 상태는 아무리 작가가 꿈을 이용하여 좋게 변명하려 하여도

편집증적이 정신병자의 모습으로 밖에 안보인다.

얼핏 얼핏 보이는, 영혜 남편의 처형에 대한 성적 욕구는

영혜에 대한 연민이나 변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2편이라고 해야 할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이자 인혜 남편의 이야기다.

아니 영혜와 형부의 섹스 이야기다.

어느 순간 나는 영혜와 형부의  포르노를 그려봤다.

상상으로 포르노를 그릴 정도로 잘 표현해 놓았다.

소설의 1편은 1인칭 시점에서 봤다면 2편과 3편은 타인의 눈으로 보고 있다.

몽고반점으로 변명을 하지만 형부와 처제의 불륜 이야기다.

물론 작가는 어떤 의미를 주고 싶었을 것이고 또 내가 못 느끼는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정신병을 가진 처제와 섹스를 하는 형부는 몽고반점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고

고급스런 어휘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그냥 돈 잘 버는 마누라 덕분에 생활비 걱정 안 해도 되는

배부런  작가라는 수컷의  욕정 이상은 아니다.

영혜 언니의 마지막 말이 잘 표현된 맞는 말이다.

"나쁜 새끼"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애를... 저런 애를."

그런데도 언니 인혜는 어떻게  자신의 남편 눈에서 공포를 찾아냈을까?

소설의 말미를 읽을 때쯤 난 갑자기

'영혜와 인혜가 서로의 남편을 바꾸어서 결혼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전혀 엉뚱한 상상을 해 봤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혜 남편과 형부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도 작가가 의도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은데 통.....

 

3편 나무 불꽃은 정신병원에서 죽어가는 영혜를 바라보는 언니 인혜의 이야기다.

인혜는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상이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고, 

내가 그때 이랬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는.

내가 아버지를 막았다면...

내가 남편과 동생의 불륜을 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았더라면...

심지어 동생과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도 자기 탓이다.

그러나 인혜의 행동은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당연스럽게 해야 할 행동이었다.

실제로 인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마음이 아프고 짜증이 난다.

 

또 하나 이 책의 특이한 구성 중 하나는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책의 총 페이지가 해설과 작가의 말까지 포함해서 236 페이지인데

23 페이지의 긴 해설서가 있다.

해설을 먼저 읽고 소설의 읽어야 했었나?

유명한 문학 평론가가 쓴 해설은 더 어렵다.

문학가 특유의 온갖 화려한 단어로 어지럽게 진열을 해 놨지만

무슨 말인지는 더 모르겠다.

심하게 표현하자만 해설은

요리 못하는 사람이 재료만 많이 넣으면 맛있는 요리가 되는 줄 알고

온갖 재료를 다 넣어 만든 잡탕요리 느낌이었다.

그냥 영혜와 형부에 대한 변명 같기도 하고

소설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이에 대한 꾸지람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해설은 읽다가 말았다.

 

일단 소설은 어렵지만 재미는 있다.

작가가 주는 의미나 메시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공부를 좀 더 하고 다시 책을 읽는다면 그 의미가 보이려나 모르겠다.

 

 

이 책은

맨부커상을 받기 전까지 3만 부가 판매되었으나

상을 받고 나서 3일 만에 32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2002~2005년까지 쓴 소설이고, 

맨부커상은 2016년도에 받았다.

상을 받기 전 10년 동안 판 책 보다 

상을 받은 후 3일 동안 판 책이

10배 이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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