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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밝은 밤

by 머구리1 2022. 3. 8.

밝은 밤(최은영)

이 소설은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우정 얘기 같기도 하고

지연 할머니들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작가가 어느 것을 더 중심에 두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역시 여기저기 많은 상을 받은 것 같다.

예전에 울산에서 본 어느 식당의 간판이 생각난다.

"KBS. MBC. SBS 아무 곳에도 안 나온 식당"

요즘 TV에 안 나온 식당 찾기도 어렵듯이 상을 받지 못한 책도 많이 없는 듯하다.

 이 책에 태클 거는 것 아니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일단 이책은 재미있다.

 

책을 다 읽고 '혹시 작가가 페미니스트 인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이 하나 같이 찌질이들이다.

그냥 괜찮은 역활로 나오는 새비 아저씨가 있지만

어쩌면 이로인해 주인공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은 더 나쁜놈처럼 보인다.

반면 여자들은 시대에 앞서가는 굉장히 똑똑한 여인들이다.

백정의 딸인 증조할머니 외동딸인 할머니 그리고 두 분 다 똑똑하고 강하며

시대를 앞서 간 사람들이다.

자신의 동생들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그 희생을 평생 감사해 주길 바라는 아빠.

자신의 가족들이 아내를 무시해도 신경 쓰지않고 

아내에게 관심없는 아빠와 사는 엄마도 그렇고

외도를 한 남편과 이혼한 지연 역시 마찬가지다.

 

서른두 살에 이혼을 하고 삶에 지친 지연은 피난처럼 희령으로 떠난다.

희령에서 10살 때 할머니를 본 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가는 길이다.

얻은 아파트에서 우연히 할머니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서로 간에 존칭을 써면서 첫 만남을 가진다.

할머니는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로 하나뿐인 손녀 지연의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한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맘이 맞아서 친하게 지내면서 옛날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설은 할머니를 통해서 듣게 되는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대부분이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일본에 위안부로 끌려가기 직전에 증조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신의 중병 든 어머니를 두고 도망친 증조할머니.

증조할머니를 구하는 바람에 가족과 등을 졌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아내가 평생 자신에게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찌질하고 무능력한 양민 출신 할아버지.

그 사이에서 태어나 평생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한 할머니.

결국은 할머니의 실패한 결혼.

할아버지는 다른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과 어머니가 찾아오자

아무 미련없이  엄마와 할머니를 두고 떠난다.

그러면서 아버지와는 더 멀어지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엄마는 아빠 없이 평생을 살았고

평범한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됐다.

그래서 남편의 외도로 인해 평범한 삶을 벗어난(이혼) 딸에게도 그 책임을 딸에게 묻는다.

"나는 너는 걱정이 안 돼. 그런데 그 약한 애가 나중에 자살이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어떤 말을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게는 엄마 말이 그랬다.

엄마는 내게 전화해서 나의 이혼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했다.

심지어 내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리고 새비아저씨를 통한 신에 대한 항의.

새비 아저씨는 돈을 벌러 간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터진 것을 눈앞에서 직접 보았고 그 피해도 입었다.

믿음이 강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그런 만행을 보고만 있었던 신에 대한 원망으로 종부성사까지 거부한다.

(종부 성사: 중병에 걸린 천주교 신자가 받는 기도로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다)

"전지전능한 천주님이 왜 손을 놓고 계신 기야.

나는 슬퍼만 하는 천주님께 속죄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 앞에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말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이 정말 계신다면 그때 뭐하고 계셨느냐고 따지고 들고 싶어.

예전처럼 무릎 꿇고 천주님, 천주님 감사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

기래 나를 살려주셨지.

기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 목숨은 뭐가 되나."

 

뒤로 갈수록 소설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새비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안타까운 우정과 삶이 그랬고

소설에 나오는 여인네들이 기구한 삶이 그랬다.

그 시절엔 다 그랬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네들의 고단한 삶에 마음이 아팠다.

단지 할머니와 엄마가 왜 그렇게 등을 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에 할머니와 희주가 재회를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소설을 끝이난다.

그냥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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