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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by 머구리1 2022. 3. 3.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작가:캔키지

     -번역:정회성

 

블로그에서 어느 분의 후기를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책 제목을 보고 엉뚱하게도 난 여배우 정윤희를 떠올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윤희 주연의 한국 에로영화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였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그 당시 미국을 먼저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근래에 쓴 책이 아니고 60년 전에 쓴 책이다.

그것도 우리나라 소설이 아니고 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60년 전 미국은  60년 전의 대한민국과 많이 다르다.

이미 지하철이 있었고, 길에는 많은 자동차가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안 됐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고,

히피와 로큰롤이 한창 유행하면서, 억압된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부르짖던 시절이다.

 

1975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다음 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주요 부문 상 5(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를 모두 받았다.

원제목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를 직역하면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갔네’인데

소설의 뒤쪽에 나오는 추장의 할머니가 부르던 노래 가사 중

Three geese in a flock/One flew East/

One flew West/And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세 마리 기러기 중, 한 마리는 동쪽으로, 한 마리는 서쪽으로, 

그리고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갔네)에서 따온 것 같다.

영어의 ‘cuckoo’가 정신병자를 의미하는 속어로 쓰이기도 하고

cuckoo's nest’는 정신병원을 의미한다고 한다.

 

 

요즘 외국 소설을 읽을 때면 이름과 대략적인 역할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니면 계속 앞으로 돌아와서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몰입이 어렵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책을 읽기 전에 인터넷에 자료를 좀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2/3쯤 읽었을 때는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영화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궁금한 생각에 급하게 영화를 찾아서 보기도 했다.

영화로 봐도 재미있었다.

2시간이 넘는 영화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1962년 작품으로 내가 태어난 시기와 비슷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인터넷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과는 조금 다르기도 했다.

-브롬든(추장)- 소설의 화자 면서 '관찰자'다.

                 땅과 삶을 백인 침략자들에게 빼앗긴 원주민 추장 아들로 병원의 가장 오래된 환자다.

                자신은 귀가 안 들린다거나 말을 못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하는 정신병자가 돼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그의 눈에 보인대로 그려진다.

                결국 나 자신이기도 하다.

-랫치그(수간호사): 다른 사람들은 국가 또는 정부라고 하는데 난 '기득권'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이 하는 행위는 다 옳다.

               자신만이 절대 善이다.

-맥머피(새환자): 관습과 지배를 깨 부수려는 자. 혁명가

             선구자는 끊임없이 자기 회생을 해야 하며, 조금의 사익도 취하지 말 것을 대중들로부터 요구받는다.

             기적이 끊어지면 의심받는다.

-의사: 무능한 정부 

             수간호사 보다 상사지만 권력은 수간호사보다 약하다.

             아주 가끔 수간호사의 힘이 약해졌다 싶으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콤바인: 사회 체제

-급성환자 와 만성환자 그리고 식물환자로 분리된 환자들 : 기득권의 입장에서 등급을 매긴 일반 대중이 아닐까?

-세명의 흑인(감시자): 권력의 하수인-국가기관

              옳고 그름의 판단은 수간호사의 눈으로만 본다.

              내 목줄은 수간호사가 쥐고 있다.

 

이 소설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간호사와 그것을 깨려는 맥머피의 싸움을

관찰자 추장의 입장에서 서술한 이야기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정신병원에  노동형을 피하기 위해서 찾아온 맥머피가 입원을 하면서

병원 내 최고 권력 수간호사와의 마찰이 생기기 시작한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맥머피는 자신은 정신병 환자가 아님을 주장하고

수간호사는 자신이 지배해야 하는 환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선악이 바뀐 것이다.

흔히 우리가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는 간호사가 여기서는 악역을 맡고 있고

15세 소녀를 강간한 전과자 맥머피가 선한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첫 싸움은 라디오 음악 소리를 줄이자는 문제로 시작되는데

이는 체제에 대한 첫 도전이자 혁명의 시작이다.

수간호사의 이런저런 핑계에 맥머피는 의사(여론)

앞세워 목욕탕을 휴게실로 바꾸자고 한다.

이 싸움에서 맥머피가 승리를 하지만 관찰자의 눈에는 아슬아슬하다.

그녀는 오늘 이곳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에서 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줄곧 이겨 온 큰 전쟁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전쟁일 뿐이고,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이길 것이다.....

몇 번 패배한다고 해도 그녀는 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한 번 지면 그걸로 끝이고 그것은 곧 그녀의 승리를 의미한다.

 

반란

월드시리즈 야구 중계를 보기 위한 협상을 했으나 수간호사의 억지에 진다.

대중들을 일깨워서 억압에서의 탈출을 얻으려 하지만 수동적인 대중들과 

수간호사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손을 들지 못하는=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식물환자들도 인원에 포함시켜서)

방어를 한다.

권력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바꾼다.

차라리 일정표 변경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손을 들어라 했으면 이겼을 텐데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지만 맥머피는 야구중계를 못 보게 하는 수간호사에 항의하기 위해 TV 앞에서 

화면이 나오지 않는  TV를 보면서 혼자서 중계를 하고 환자들은 환호한다.

여기의 표현이 소설과 영화가 약간 다르다.

소설에서는 꺼진 TV 앞에 가만히 앉아서 TV를 보기만 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TV를 보면서 열심히 중계를 하는 좀 더 적극적인 맥머피로 묘사된다.

수간호사는 맥머피의  과격한 돌출행위를 보아왔음에도 그를 계속 수용할 것인가를 심사하는 자리에서

교도소로 그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되고 계속 이 정신병원에 두길 바란다.

절대 맥머피에게 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맥머피를 징계할 때 수간호사(기득권)는 절대 직접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중만 내 비치면 의사들(정부)이 알아서 죄를 만들어간다.

그러면 자신은 관대한 것처럼 적당히 반대를 하면 된다.

 

그러나 맥머피는 병원 직원의 이 말 한마디에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는 내보내 줘야 나갈 수 있는 거야.”

, 교도소는 형기가 끝나면 나갈 수 있지만 이곳은 수간호사의 승인이 없으면 못 나간다.

형기 얼마 안 남아서 곧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맥머피로서는 청천벽력의 소리였던 것이다.

다른 환자들이 래치드 등 병원 관계자들의 부당한 처우에도 참고 고분고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었다.

즉 기득권이 승인하지 않은 모든 자유는 허상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억압하고 있는 자유를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병원 홍보담당자의 말이 이를 잘 표현한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도망치려는 사람은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사람일 거야."

어쩌면 환자들은 여기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바깥으로 나가는 게 무서워서.

추장의 독백이다.

안개가 자욱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이제 나는 안다.

안개가 자욱할수록 그 속에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맥머피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인

수간호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담배를 가져가기 위해 간호사실 유리창을 깨고 자신의 담배를 가져간 일 이후로

의사들도 수간호사의 대장질에 조금씩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결국 낚시를 나갈 때는 의사도 자신의 차까지 가지고 참석을 한다.

그러나 추장의 눈에는 맥머피가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수간호사의 유리창을 깨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제 당신이 큰 인간이라는 걸 그들이 알았어요.

그들로서는 당신을 쓰러뜨려야 해요.

....

그들은 그런 식으로 당신을 쓰러뜨리지 않아요.

당신이 싸울 수 없도록 변화시켜 버려요.

뭔가를 머릿속에 장치해요. 뭔가를 심어버리는 거예요.

큰 인간이 될 기미가 보이면 곧 일에 착수하여 작은 인간으로 남아있는 동안 더러운 기계를 장치해요.

그래서 완전히 변할 때까지 계속 작동하죠.

 

결국 탈출하기로 한 날

빌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춘부를 정신병원으로 불러서 빌리의 동정을 떼 주지만

자신의 탈출은 실패를 하고

수간호사의 압박으로 빌리는 자살을 하면서 맥머피는 마지막 길을 택한다.

수간호사는 맥머피를 뇌수술을 하여서 평생 자신에 대항한 자의 본보기로 삼기로 한다.

그들은 마치 잡지를 보거나 물을 마시러 온 것처럼 다가와서 사나이의 얼굴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 저 사나이가 맥 머피라면

휴게실에 명찰을 붙인 채 이십 년이든 삼십 년이든 누워 수간호사의 체제에 도전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견본으로는 결코 남아있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 생각했다.

 

 

맥머피로 인해 생에 눈을 뜬 추장은 맥머피를 베개로 눌러서 죽이고

병원을 탈출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들의 혁명 과연 성공한 것일까?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고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단지 난 이 생각이 들었다.

병실의 환자들이 바뀌었다고.

이 정신병원에는

맥머피 대신 랫치그 수간호사 가 들어가야 했고

빌리의 병실 침대에는 늙어 보이기 싫은 그의 어머니가 들어가야 하고

추장의 자리에는 추장을 입원시킨 사람들이 들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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