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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by 머구리1 2022. 3. 2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윤복(옥중서간)

 

전에는 책을 읽어도 후기를 써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금년부터는  어떤 책이든 짧게라도 적어보기로 했다.

자꾸만 약해져가는 기억력 보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신영복 선생의 수감생활 중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편지의 수신인은 대부분 아버지고 중간중간 어머니, 형님,형수동생, 그리고 계수씨도 있다.

79년 말쯤에서부터는 어머니님과 형수님 그리고 계수씨께 보내는 편지도 많아진 것 같았다.

82년 이후의 편지는 더 많은 분량이  형수님과 계수씨의 편지였다.

아마도 같은 남자인 형이나 동생보다는 형수나 계수씨가 편했나 보다.

아니면 부모님이나 형제 같은 친족에게 보낸 편지는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이 많아서

교도소의 보안 검열에 걸려 편지를 빼앗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통혁당 사건이라는 게 중앙정보부가 박통의 개 노릇을 하던 시절인 3공화국의 사건이니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이른바  유우성 사건으로 알려진 서울시청 간첩조작 사건도 안기부 작품이다.

21세기인 2013년에도 간첩을 만들어내던 우리나라 정보기관인데

박정희 독재가 시작되던 시절의 중앙정보부니  정권을 위해 서면 뭐든 못했을까.

판결 18시간 만에 급하게 사형을 집행했던 인혁당 사건도 74년도며 이도 박정희의 권력유지를 위한

중앙정보부와  사법부의 합작품으로 결국 무죄가 되었다.

통혁당 사건도 유족들이 작년에 재심을 청구했다니 기다려 볼 일이다.


감옥 내에서 글쓰기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유일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한 달에 한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밖에 없었다고 한다.

글 내용이 편지글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어색한 구석이 있는 것도 있지만

어쩌면 편지를 빌어서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검열 때문에 없어진 편지도 있다고 하니 실제로 쓴 글의 양은 더 많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1941년생인 선생은 복역한 지2020일 만인 1988815

광복절 특사로 석방이 되었으며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 나이로 76에 세상을 떠났으니 인생의 1/4 이상을 감옥에서 있었다는 말이다.

사상의 자유를 선택한 죄의 댓가(왜 이걸 표준말에서느 '대가'라고 하지?) 치고는 너무 가혹한 삶이었다.

살인을 해도 20년을 안 살리는 판사들은, 생각이 다르다고 20년 옥살이를 시켰다.

체제 전복을 꿈꾼 죄라고 말한다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일당은 체제 전복을 실행했지만, 성공한 쿠테타라고

잘먹고 잘 살기만 했고, 그의 후손들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산다'고 대답하고 싶다.

 

 

41년 생이면 36년생인 내 아버지와 비슷한 연대의 사람으로 서울대를 나올 정도면

의령 시골에서는 금수저나 은수저 정도는 됐지 싶은데

어떤 사연으로 혁명을 꿈꾸는 진보주의자가 됐는지 궁금하면서도,

보장된 안락한 미래를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용기는 존경스럽다.

서울대를 나와서 육군 장교에, 사관학교 교수까지 하고 있는 엘리트로서

장밋빛 미래가 약속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길을 걷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처음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고, 뒤에 '엽서'가 추가로 출간이 되었으며

이 책은 '엽서''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합친 형태의 책이다.

이 책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동안 찾아 읽지 않은 이유는 마음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죄를 만들어 무기징역이라 사슬로 묶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우리나라 사법부의

절제되지 못하고 양심적이지도 않은 판사란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책을 읽기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어쩌면 가진 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약한 자에게는 끝없이 강해서 神이라도 된 듯 판결봉을 두드리는

그들을 마주치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중간중간에 있는 편지의 원문 사진을 보면 얼마나 글쓰기가 절실했는지가 보인다.

작은 종이에 작은 글씨로 힘주어서 쓴 모양새가 그의 맘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리고 50년 전에 쓴 글인데 지금 읽어봐도 글의 흐름이나 내용이 그렇게 많이 어색하지가 않다.

 

 

주석을 최소화 하여, 책에 있는 글 중 맘에 와닿았던 몇 문장 옮겨본다.

 

남한산성이라 부르던 육군교도소에서 사형수와 장기수들은 왕이자 조폭 두목 같이 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그들이 모여있는 8호 방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곳이었다.

8호 방 문이 열리면 다른 방 죄수들은 모두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야 한다.

......어쩌면 사형수는 물론이고 장기수들은 모두 인생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누구보다도 약하고 서러운 자이기 때문에 그 표현이 치열하고 극성 인지도 모른다.

괴롭고 서글흔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취침 나팔소리마저 자지러지고 나면

이 8호 감방에도 이윽고 무덤 속 같은 정적이 찾아든다.

가끔 악몽에 시달리는 잠고대가 이 정적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내일 아침 기상 나팔소리가 칼끝같이 이 정적을 쪼갤 때까지 여기 이 감방은 그대로 하나의 무덤이 된다.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한산성이라고 부르는 육군교도소에서

민간인 수감시설인 안양교도소로 이감이 되고 나서는

편지의 글씨가 바뀐 것 같았다.

남한산성에서의 글씨가 거친 글씨체라면, 안양교도소에서의 편지는 글이 정갈하다.

그림도 깨끗하고 해서 요즘으로 치면 잘 만든 시화(詩畵) 같기도 하다.

익숙해진 징역살이의 안정이 보인다면 혼자만의 착각일까?

 

 

-그림엽서-

대개의 책은 실천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너무나 흰 손에 의하여 집필된 경험의 간접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얻은 지식이 흔히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이기 쉽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고, 실천과 함께 발전하지도 않는 허약한 가설,

낡은 교조에 불과할 뿐 미래의 실천을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분서를 욕할 수만은 없습니다.

-1979.6.20 아버님께-

 

글을 중간쯤 읽다가 갑자기 그의 부친이 궁금해졌다.

부친이 어떤 분이기에 감옥에 간 아들과 이런 높은 수준의 대화가 가능할까?

답신이 없어서 받은 편지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보내는 편지의 수준으로 보아

그의 어머니, , 형수, 동생, 제수씨의 지식이나 지혜 수준도 상당하지 싶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의 부친도 대단한 분이었다.

부친 신학상 선생님은 초중고교 교육자로 30년을 봉직했고 책도 낸 분이었다.

교육감 시절에는 고향의 향토문화를 정리한 책과 한국말 발음 사전을 낸 학자이기도 했다.

부친의 나이 60에 아들이  '통혁당사건'으로 투옥되었고  아들이 무기 징역살이를 시작하자

스스로 근무하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다.

가석방으로 20대의 아들이 마흔일곱이 되어 밝은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옥바라지를 자상하게 하는 한편, 저술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로는  '사명당실기''김종직의 도학 사상'이' 있고,

'사명당실기'를 보완한 '사명당의 생애와 사상' 등이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 교사를 하기도 했으나 민족정신이 투철해서,

일본인 교장이 조선학생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항의를 해서 신문에 보도가 되고

한글 연구 모임을  했다고  파면되기도 했다.

대단한 아버지에 대단한 아들이다.

 

 

책에 있는 다른 사람의 시인데 좋아서 여기에 옮겼다.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이성부-

 

어머니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면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항상 무엇을

없음에 절실할 때에야

그 참모습 알게 되듯이.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

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선연히 가슴에 차 오르는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1979.7.25 계수씨께 보내는 편지 중-

 

섬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 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며,

서울 사람에게 있어서 해는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사람이 산골 사람을, 서울 사람이 섬사람을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1982.7.13 계수씨께 보내는 편지 중-

 

무기수들에게는 귀휴(군인들의 휴가 같은)라는 제도가 있는 모양이다.

책을 보면 두 번 이상의 귀휴가 있었던 것 같다.

16 년이 된 84년 6월쯤에 엿새간의 귀휴를 가지게 되었다.

교도소로 돌아오는 형님의 차 안에서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저고리, 바지 등 세상의 옷들을 하나하나 벗어버리고

다시 수의로 갈아입을 때, 그때의 유별난 아픔은 냉정한 이성의 언어를 거부하는 감정의 독립 같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곳에 돌아와 자도 자도 끝이 없는 졸음과 잠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휴식'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84.6.19 계수님께 보내는 편지 중-

 

 

대전의 잘 알려진 원동의 창녀촌에는 '노랑머리'라는 여자가 있는데 한 달에 서너 번씩은 약을 복용하고는

도루코 면도날이나 깔창(유리창)으로 제 가슴을 그어 피칠갑으로 골목의 건달들에게 대어 든다고 합니다.

온몸을 내어던지는 이 처절한 저항으로 해서 그 여자는 기둥서방이란 이름의 건달들의 착취로부터

자신을 지킨 유일한 여자라 합니다.

이 여자의 열악한 삶을 그대로 둔 채 어느 성직자가 이 여자의 사상을

다른 정숙한 어떤 것으로 바꾸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여인을 돌로 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숙한 부덕이 이 여자의 삶을 지켜주기나 개선시켜주기는 커녕,

오히려 무참히 파괴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똥치 골목, 역전앞, 꼬방동네, 시장 골목, 큰집 등등 열악한 삶의 존재 조건에서 키워온

삶의 철학을 부도덕한 것으로 경멸하거나 중산층의 윤리의식으로 바꾸려는 여하한 시도도

그 본질은 폭력이고 위선입니다.

-1984.8.8 계시씨께 보내는 편지 중-

개인적으로 여러 편지 중 이 편지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다.

 

 

잡초를 뽑으며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며

아리안의 영광과 아우슈비츠를 생각한다.

잔디만 남기고 잔디 외의 풀은 사그리 뽑으며

남아연방을 생각한다. 육군 사관학교를 생각한다.

그리고 운디드니의 인디언을 생각한다.

순화교육시간에 인내 훈련 대신 잡초를 뽑는다.

잡초가 무슨 나쁜 역할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잔디만 남기고 잡초를 뽑는다.

도시에서 자라 아는 풀이름 몇 개 안 되는 나는

이름도 모르는 풀을 뽑는다.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잡초가 된 풀을 뽑는다.

아무도 심어준 사람 없는 잡초를 뽑으며,

벌써 씨앗까지 예비한 9월의 풀을 뽑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잘 알고 있건 것 같은 것들이 갑자기 뜻을 잃는다.

구령에 따른 동작처럼 생각 없이 풀을 뽑는다.

썩어서 잔디의 거름이 될 풀을 뽑는다.

뽑은 잡초를 손에 쥐고

남아서 훈련받는 순화 교육생을 바라본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원산폭격, 한강철교의 순화 교육생을 바라본다.

뽑혀서 더미를 이룬 잡초 위에 뽑은 잡초를 보태며

15척 주벽을 바라본다.

주벽 바깥의 청산을 바라본다.

-1984.9.14 계수님께 보내는 편지 중-

 

 

'1 등'이 치러야 하는 긴장감, '모범'이 요구하는 타율성에 비해

'중간은 풍요하고'  '꼴찌는 편안하며' '쪼다는 즐겁다'는 역설도 그것을 단순한 자기 합리화나

패배주의의 변이라 단정해버릴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진실을 그 속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4.10.5 형수님께 보내는 편지 중-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84.11.29 형수님께 보내는 편지 중-

 

 

작년 가을 특별 구매 때 사서 걸어두었던 마늘을 벗기다가 느낀 일입니다.

마늘 한 통 여섯 쪽의 겨울을 넘긴 모습이 가지가지입니다. 썩어 문드러져 냄새나는 놈,

저 하나만 썩는 게 아니라 옆의 쪽까지 썩게 하는 놈이 있으며,

새들새들 시들었지만 썩기만은 완강히 거부하고 그나마 매운맛을 간신히 지키고 있는 놈도 있으며,

폭싹 없어져버린 놈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마늘 본연의 생김새와 매운맛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흐뭇하게 하는 것은 그 속에 싹을 키우고 있는 놈입니다.

교도소의 천장 구석에 매달려 그 긴 겨울을 겪어면서도 새싹을 키워온 그 생명의 강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87.3.21 계수님께 보내는 편지 중-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생각이 다르다는 죄로 20여 년의 무기징역을 살았는데 그 징역살이가

수도 생활하는 성직자 같이 고요하다.

억울해 하는 것도 보이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참 대단한 분인 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생각의 다름으로 죄를 가르지 않는 저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책에 있는 몇 장의 편지를 사진으로 아래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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