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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by 머구리1 2022. 3. 31.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

 

윤흥길 작가는 '완장'으로 유명한 작가였는데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예전에 조형기 씨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TV 드라마 '완장'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완장을 통해서 권력이 없던 사람이 권력을 쥐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책은 어느분의  블로그를 통해서 읽게 되었다.

선입견으로 감정 소모가 많을 것 같아서 읽기를 망설였지만 그런 책은 아니었다.

쓰여진 연대순으로 총 아홉 개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서로 연결된듯한 느낌도 약간은 있다.

1970년도에 쓴 '황혼의 집'부터, 93년도에 쓴 ''까지, 어떤 소설들은 옆 마을 이야긴가 싶은 연결들도 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이책 말고도 다른 형태의 책이 또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완전 별개의 9가지 중단편을 모은 것인데 다른 책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후속 글  4개의 소설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배경이 된 사건은

1971도 일어났던 실제 사건이고  작가는 그 속에 있었다고 한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그 사건을 인터넷에서 옮겨다 적어본다.

1971810일광주대단지 주민 5만여 명이 정부의 무계획한 도시 정책과 졸속 행정에 반발해 폭동을 일으킨다.

경기도 광주군의 광주대단지는 서울시가 1968년부터 서울 시내의 무허가 판잣집 정리 사업의 한 방책으로

철거민을 집단 이주시키며 조성한 곳이다.

서울시는 애초에 강제 이주시킨 철거민들에게 가구당 20평씩 평당 2천 원에 분양하고 대금은 2년 거치 3년 분할 상환토록 통고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얼마 뒤 갑자기 태도를 바꿔 땅값을 평당 8천 원에서 1만 6천 원까지 올리고, 그것도 한꺼번에 내라는 통고를 한다.

게다가 토지 취득에 따른 취득세 · 재산세 · 영업세 · 소득세 등 갖가지 조세까지 부과하자 철거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주체할 수 없을 지경으로 끓어오른다.

주민들은 이내 ‘불하가격시정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불하 가격 인하, 세금 부과 연기, 긴급 구호 대책 취역장 알선 등을 요구하지만 당국은 이를 묵살한다.

81011, 대책 위원회와의 예정된 면담 자리에 서울시장이 아무 말 없이 나타나지 않자 분노한 주민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몰려나와 출장소와 경찰차를 파괴하면서 광주대단지 전역은 6시간 동안이나 무법천지의 마비 상태에 빠져든다.

뒤늦게 나타난 서울시장이 요구 사항을 무조건 수락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주민들은 흩어지지만, 이 사건으로 주민과 경찰 1백여 명이 부상하고, 주민 23명이 구속된다.

해방 이후 최초의 대규모 도시 빈민 투쟁으로 기록된 이 광주대단지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작가 윤흥길이다.

 

 

1. 황혼의 집(1970)

  빨치산 오빠와 자살한 언니를 둔 경자네 집의 이야기.

'집채를 사를 듯한 붉은 햇살이 주막 창문에 번득이기 시작하면 할멈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참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여우의 목청마냥 길고 날카로운 부르짖음으로 시작하여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그 울음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욕심으로 일부러 그처럼 엄살을 피우는 것같이 들렸고,

누구의 잘못을 호되게 나무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참을 수 없는 아픔을 아무에게나 호소할 때 사람의 입에서 당연히 흘러나오는 그런 무시무시한 비명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 울음소리가 들리면 나는 벌레 먹은 어금니 하나가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 나는 할멈의 얼굴이 항상 붉은 이유가 늘 마시는 술 때문인 줄로 알았었다.

그러나 차차로 그것은 기우는 햇살과 유리창에 번득이는 저녁놀이 얼굴에 묻어 지워지지 않는 탓이라고 믿게 되었다.'

 

 

2. (1972)

도시계획법에 어긋난다고 집을 철거한다는 글을 보면서 그 옛날 지붕개량 안 한다고

초가집인 우리 집 지붕을 쇠스랑으로 잔인하게 긁어내리던 면서기 놈이 생각났다.

'그때 자유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사람이 우범지대인 판자촌 마을에 보안등을 가설하고

길에 자갈을 깔아주는등 선심을 쓰는 걸 우리도 보았다.

선거에서 그가 아슬아슬한 표차로 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다음 마을 골목길은 도로 깜깜해졌다.'

 

 

3. 엄동(1975)

패잔병들의 뒷얘기 같은 씁쓸함.

갑자기 폭설이 쏟아진 뒤 퇴근길의 서울 특별시민이 아닌

서울 특별시민이 되고 싶어 하는

서울특별시 주변 변두리 사람들의 씁쓸한 이야기.

 

 

4.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

셋방살이의 서러움에 벗어나고자 은행주택을 마련한 오선생 집에 권씨네가 셋방살이를 들어온다.

인 서울 진입을 꿈꾸는 평범한 소시민 권 씨는 집 한 채 마련하려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과자가 되고

갈 곳 없는 처지의 가장이 되어서, 그의 자존심이라고 볼 수 있는 잘 닦여진 구두 9켤레를 두고 사라졌다.

이 과정을 집주인인 화자의 눈으로 본 억울한 세상.

권 씨는 투사도 아니고 싸움꾼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었지만 억울함에 울부짖다

어느 순간 자신도 기억 못 하는 행동으로 전과자가 되어있었다.

권 씨가 강도짓을 하고 나가면서 말하는 "나 이래봬도 대학 나온 사람이오"라는 대사는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생각나게 하지만 그와는 또 다른 의미의 독백이다.

이 독백은 아홉 켤레의 구두와 함께 권 씨의 마지막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5. 땔감(1978)

남의 무 한 개도 못 훔쳐먹게 하던 아버지는 세상살이와 타협이 아닌

살기 위한 선택으로 청솔가지를 도둑질하게 되고

아들은 화물기차에 실린 석탄을 도둑질하게 된다.

무기력한 후진국의 가장의 현실.

맞지 않는 정부의 정책.

내 어린 시절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난방용이나 취사용 연료가 나무밖에 없는데 나무를 해 오면 산감이 단속을 나오고 벌금을 메겼다.

한겨울에 얼어 죽어라는 얘긴지....

 

 

6.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1978)

자신의 남편이 빨갱이 차 씨의 손에 죽어서 미쳐버린 당숙모.

마을 사람들은 빨갱이 집을 쳐들어와서 빨갱이 차 씨와 가족들을 죽였지만 아들은 살아 남았다.

미친 당숙모는 누군지도 모르는 차 씨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알고 키웠다.

가족들은 차 씨 아들을 버리려고 하나 당숙모의 광기에 포기를 하고 호적에 입적을 시킨다.

그는 결국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은데.

내 당숙 한분도 육이오 때 빨간 완장 찬 죄로 무기징역을 살았고 그로 인해 우리 친척들도

연좌제의 피해를 많이 봤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많이 됐었다.

"애비가 빨갱이였다고 그 자식까정 배냇뿔갱이는 아니것지"

 

 

7. 오늘의 운세(1983)

우연히 출장길에 같은 버스에 탄 죄수에서 편지 두 통을 받아서 전해 주기로 하는데

죄수의 나약한 외모를 보고  피해자라 판단하고, 그를  도울 생각에 가해자라고 생각되는 수취인을 찾아가는데

예상과 달리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어있었다. 

'어리석을 정도록 선량한 인간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내맡기는 방법뿐이라고 한다면

그 이상 소름 끼치는 노릇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악마는 역시 악마였다.

그로 하여금 그런 계교를 짜내게 만든다는 그것부터가 벌써 악마가 지닌 탁월한 능력이자 선량한 인간들을 마음대로

괴롭힐 수  있는 확실한 자격인 셈이었다.'

 

 

8. 매우 잘 생긴 우산 하나.(1987)

유학파로 출세한 초등학교 동기 조박사에게 선물로 받은 우산이 다방 아가씨에게 무전기로 오해를 받게 되고

동네 처녀를 끌고 가려던 양아치들도 우산을 보고는 경찰인 줄 알고 도망을 친다.

이에 재미를 붙인 구청공무원  6급 호적계장인 김달채 씨는 은근히 우산을 이용해 권력맛을 본다.

결국에 시위 현장서  한번 더 써먹으려던 그의 허세는 무너지고 만다.

'고급 관료나 사장, 박사들만 모여서 부어라 마셔라 질탕하게 노는 자리에 뒤늦게 6급 주사직의 불청객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도도하던 취흥은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저마다 김 팍 샜다는 표정으로 비 맞은 장닭처럼 구중중히 젖어서 들어서는 김달채 씨를 돌아다보며

모두들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오로지 조 박사 한 사람만을  목표해서 부득부득 무리해가며 찾아온 자리였으므로

다른 사람의 노골적이 냉대 따위는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다.'

 

 

9. 쌀(1993)

실향민 장인 장모의 쌀에 대한 엉뚱한 믿음.

쌀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할머니의 도령 신앙이나

고향쌀이 자신의 병을 치료한다고 믿는 장모의 신앙이 같은 것이데

장인 장모는 곧 죽어도 하나님의 치유능력이라고 고집할까?

개신교 장로님이신 장인의 대사다.

"고향 쌀은 고향에서 생산된 단순한 의미의 곡물이 아니야.

고향 쌀은 바로 고향 그 자체야.

우리네 한국인들 심성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쌀에 대한 관념은 거의 종교에 가까울 정도로 신성시되지.

왜냐 하면 땅과 쌀은 사람과 제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순환 관계를  이루고 있는 동일체이기 때문이지.

어제의 땅은 오늘의 쌀이 되고, 오늘의 쌀은 오늘의 사람 몸과 한 몸을 이루고,

오늘의 사람은 다시 내일의 땅이 되는 법이야.

땅이 곧 쌀이고 쌀은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땅인 이 오묘한 이치를 최서방 같은 젊은 세대가 알 턱이 없지.

암 알 턱이 없고말고."

 

 

아울러 이 책에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과 잘 사용하지 않는 말들이 많다.

문맥을 맞춰서 이해는 할 수 있겠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마지막 ''에 나온 단어들만 일일이 국어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에멜무: 결과를 꼭 바라지 않고 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

-주초: 술과 담배.

-독선생: 한집안의 아이만을 맡아서 가르치는 선생.

-사품: 어떤 일이나 동작이 진행되어 가는 바람이나 때.

-고부라지기: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푹 빠져들다.

-더께: 몹시 오래된 물건에 겹겹이 앉은 거친 때.

-홈싹: 물이나 빛, 분위기 따위에 푹 젖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

-회향병: 타향에 있는 사람이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것을 병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고샅길: 마을의 좁은 골목길.

-쇠딱지: 어린아이의 머리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때.

-구상유취: 입에서 젖내가 난다는 뜻. 말이나 행동이 유치하다는 말.

-사품: 어떤 일이나 동작이 진행되어 가는 바람이나 때.

-허우단심: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걱정이 되거나 안타까울 때 내는 말

-농투산이: ‘농부’를 얕잡아 이르는 말.

-박람강기: 여러 가지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함.

-도령 신앙:쌀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신앙.

-뱃구레: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을 속되게 이르는 말.

-한유하다: 한가하게 노닐다.

-벼린: 불에 달구고 두드려 날카롭게 만들다.

-낯꽃: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의 표시.

-만좌중: 자리에 꽉 차게 늘어앉은 여러 사람 가운데.

-싸개통: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욕을 먹는 일.

-밑두리콧두리: 확실히 알기 위하여 세세히 캐어묻는 근본.

-동티: 파 거나 건드리다.

-수중고혼: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외로운 넋.

-깔축없는: 조금도 부족하거나 남는 것이 없다.

-얼간망둥이: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좀 모자라는 사람.

-미증유: 아직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

-얀정머리: ‘인정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지천꾸러기: ‘천덕꾸러기’의 방언.

-뜨더귀판: 사물을 조각조각 뜯어내거나 갈가리 찢는 판.

-애오라지: 마음에 부족하나마 겨우.

-괘꽝스럽다: 정상에서 벗어나 엉뚱하고 괴이한 데가 있다.

-탁효: 뛰어난 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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