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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by 머구리1 2022. 4. 5.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박노해-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박노해는 본명이 아니고 시인의 가명이다.

본명은 박기평이지만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줄여서 박노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아마 서슬퍼른 공안정국에서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이기도 할 것이다.

박노해 시인은 고졸 시인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정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비해

박노해 시인의 경우는 선린상고 야간부가 그의 최종 학력이다.

57년생이니 그 당시 선린상고면 덕수상고와 더불어서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것이다.

 

전라남도 함평 빈농의 아들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였으나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하여 여순사건 때 빨치산이 되었으니

부친의 생이 그의 삶에 꽤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가난한 집안에 전라도 출신, 빨갱이 아들 신분으로 6~70년대를 살아왔을 그의 삶이

얼마나 궁핍하고 고통스러웠을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그런 삶이 시인을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그의 시는 여러편 들어봤지만 책을 직접 사 본 적은 없다.

사실 박노해 신부는 이책보다는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했던 것 같다.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까지 판결받았으나,

2008년도에는 이 건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후배와 썸씽이 있었네''비싼 한약을 먹었네' 하는 것들도

안기부와 보수언론이라고 하는 기레기들이 만든

작품이고 생각한다.

 

책을 몇 장 읽다가 덮었다.

책을 덮어서 화장실에 가져다 두었다.

매일 아침마다 한두 편 정도만 읽고 하루 내내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소설 읽듯이 詩시를 읽는 내가 영 아닌 듯 해서다..

詩는 속독으로 후다닥 읽어서는 맛을 모르고 넘기는 음식 같은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식가가 음식의 숨겨진 맛을 음미 하듯이.

와인 소믈리에가 입안에 머금은 와인을 가지고 포도의 고향과 숙성 정도를 찾듯이

조금씩 시의 맛을 느껴보고자 한다.

 

대신 그의 대표작품이자 박노해를 잘 표현한 '시다의 꿈'

여기에 옮겨 놓으면서 감상 후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시다의 꿈-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둑 잘라


피 흘리는 가죽 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이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오는 온몸을 소름 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림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치는 공단 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로


새벽별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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