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생 앞으로 되어있던 시골집을 아내 앞으로 이전하였다.
귀향을 위한 사전 준비 중 하나다.
20년 전 고향집을 지을 때 난 돈만 조금 보탰고 거의 대부분 동생이 지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생전에 이 집은 둘째 아들을 주고 싶어 하셨다..
난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 집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오도재 올라가는 길에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이 있어서 그곳에 집을 지을
생각이었고, 대략 육백 평 정도의 땅으로 집 한 채 짓고 텃밭 정도 가꾸면서
살기엔 최적의 장소기도 했다.
지안재 지나서 오도재 올라가는 길 '거북쉼터' 바로 뒤쪽 땅이 그 땅이다.
재작년 인가 여름휴가 한날 거북쉼터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꽤 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끊임없이 올라가는 오토바이 부대의 굉음,
자전거 동호회의 힘내라는 응원소리는 애교였다.
우리나라에 오토바이가 저렇게 많았나 할 정도로 많았고 그 소음 또한
만만찮았다.
왜 오토바이는 저렇게 떼거리로 몰려다녀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거기다가 덤프트럭,SUV 차량들의 소음. 물론 일반 승용차들의 소음도 한몫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관광버스의 행렬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오르막 경사가 심하다 보니 차량들의 소음이 너무 심했다.
큰 사고도 두어번 나서 내 논으로 덤프트럭이 추락해서 부부가 숨진 사고도 있었고
관광버스가 전봇대를 박고 멈춘 사고도 있었다.
또 하나의 염려는 이웃 간의 인간관계였다.
단 두 집 밖에 없는데 그 두 집에 서로 원수다.
내가 만일 같이 살면서 이웃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살 일이 걱정됐다.
편치 않은 이웃과 매일 얼굴 부딪히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일까?
해서 부모님이 살던 집으로 가자고 마음을 바꿨다.
동생은 어차피 이 집에 들어올 일이 없다.
함양읍에 아파트가 있고, 사과밭에도 살림집이 있다.
동생이 이 집에 들어올 일은 1%도 되지 않는다.
해서 동생에게 이집에 들어와 살고 싶으니 적당한 가격을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동생 말이 걸작이다. 그냥. 들어와 살란다.
어차피 자기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집을 팔아도 여동생들 줄 생각이란다.
그러니 이전해 줄 테니 그냥 들어와 살란다.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제수씨 입장도 있으니 그렇게 혼자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고 해도, 이미 제수씨와도 이야기 끝 냈단다.
"그러면 나 안 들어간다"라고" 했더니 여동생들과 이야기해 본단다.
동생들과 이야기 해 보니 여동생들도 자기들이 왜 돈을 받냐고 난리다.
여동생들이 돈을 안 받으니 자신도 못 받는다고 또 고집을 세운다.
알았다고 이야기하고 아내에게 알아서 적당한 액수의 돈을 입금해 주라고 했다.
아내가 동생 통장으로 돈을 부치긴 했는데 많이는 못 챙겨줘서 미안타.
내 동생은 참 신기한 사람이다.
난 동생을 부처라고 부른다.
난 성질머리가 못 되고, 수양도 안 돼서 남과 옮고 그럼도 따지고
싸우기도 하고, 험담도 한다.
그런데 동생 눈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도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말한다.
내 눈에 나쁜 사람도 동생 눈에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나쁜 사람은 아니란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도 동생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
부처가 맞다.
올 초 옆집 후배의 집 때문에 내가 속상해 할 때도
"괜찮아요. 앞은 훤한데 뭐.
마당에서 깨벗고 뛰어 다녀도 마을 길에서 안 보이니 좋잖아요"
하고 웃고 마는 사람이다.
8년 전,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사과밭 계곡에 원두막을 지어서는
나무로 원두막 바닥을 깔고
형수 몸에 안 좋을까 봐 페인트도 안 칠하고 관리를 한 사람이다.
아직까지 가을이면 직접 농사지은 최상품 사과 한 박스와 쌀 한 포대를
여동생들 시어머니들께 다 보낸다.
그러면서도 생색 한 번을 안 낸다.
내가 봄에 농약값이라도 하라고 많지 않은 돈을 보내면 또 온 동네 자랑을 한다.
형수가 농약값 보냈다고 여기저기 자랑을 해서 우린 또 좋은 형과 형수로
주변에 알려진다.
참 민망한 일이다.
일찍 떠난 부모님은 못 미더운 장남을 위해서 동생을 남겨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한 번씩 동생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장남과 차남이 바뀐 것 같다고.
서울에 사는 돈 많은 친구가 내게 한 말이 있다.
"난 네게 부러운 것이 없었는데, 단하나 저런 동생 가진 게 너무 부럽다"
지난주
정년 휴가차 고향에 갔을 때도 어디서 구했는지 호도 한 봉지를
형수가 호도 좋아하니까 주라고 살며시 쥐어주고는 간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