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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부부간의 믿음

by 머구리1 2022. 9. 19.

6촌 동생의 소개로

만난지 28일 만에 한 결혼식은 우리 부부의 4번째 만남이었다.

예전말로 손 한번 못 잡아보고 결혼을 했다.

조선시대나 구한말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쌍팔년도의 일이다.

 

신혼 생활의 궁핍함이야 뻔했다.

직업군인으로 번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은 동생의 치료비로 이미 다 들어갔고

대기업이라는 하지만 그 당시 대기업이라고 요즘처럼 특별히 월급이 많지는 않아서

취직한 지 일 년도 안 된 회사원인 나의 재산은 백만 원이 안 됐다.

급하게 서둔 결혼의 책임감 때문인지 부모님은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400만 원짜리 단칸방을 얻어주셨다.

그 한칸짜리 단칸방에서 3년을 살았다.

 

결혼 후 우리 부부는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 있었다.

무슨 각서를 쓰고, 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은 아니었고, 그냥 은연중의 약속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남편이 벌어온 돈의 액수에 대해서 불평을 하지 말고

  남편은 아내가 쓰는 돈에 대해 간섭 하지 말자."

아주 쉬운 것일 수도 있고 어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결혼 34년이 다 된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고

우리 부부가 아직까지 남들에게 잉꼬부부 소리 들으면서

즐겁게 웃으면서 잘 사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회사의 파업

그리고 매년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의 긴 파업

그 당시 울산의 현대중공업 노사분규는 유명했다.

첫애를 가졌을 때는 최루탄을 피해서 창원 큰처남 댁으로 피난을 가 있기도 했다.

파업으로 인해 궁핍할 살림에서도 아내는 한 번도 내게 돈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아마 이제껏 힘들다고 얘기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내는 친정 오빠에게 돈을

빌려서 살림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 또한 내가 벌어 온 돈의 사용처에 대해 한번도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경조사 비용 또한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

물론 큰돈이 들어가는 경우 의견을 표하긴 하지만 대부분 아내의 생각대로 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고 3년 만에 처음 탄 적금이 동생 포클레인 구입비로 들어가고

막내 여동생 등록금을 대신 내 준 것도 아내의 생각이었다.

부모님 병원비도 꽤 많이 들어갔지만 동생들한테 분담시키지 않았다.

그냥 함양에서 발생한 병원비는 남동생이 냈고,

창원 병원에서 발생한 병원비는 우리가 냈다.

 

95년도에 지금의 이곳으로 이직을 할 때.

그때 벌써 애가 셋이었고 막내는 돌이 안 됐었다.

보통의 아내들이라면 이직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만도 한데

아내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당신이 이직을 결심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신 원하는 대로 해라." 고 했고

단 하나 조건은

따로 떨어져서 사는 것 싫으니

집을 빨리 구해서 이사는 최대한 빨리 가자 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부랴부랴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지금도 난 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급여 계좌의 거래 내역을 전혀 모른다.

모든 돈은 아내가 관리한다.

지금 우리 부부 앞으로 되어있는 돈이 얼마인지도 잘 모르고

어느 은행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아내가 모르는 딴 주머니를 차지 않는다.

딴 주머니 차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내는 내가 원하는 돈은 이유를 묻지 않고 준다.

남편에게 돈 주면서 이유를 자꾸 물어보면 결국 남편이 딴 주머니를 차게 된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평생 외벌이인 우리 집 경제 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렇지만 아내의 슬기로운 살림 솜씨 때문에 그럭저럭 잘 산다.

노후에도 풍족하진 못해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할 만큼의 노후 준비도 돼있다.

 

이런 꽤 괜찮은 삶을 산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 아닐까?

첫인상 하나만 보고 결정한 결혼이

그래도 주변에서 부러워할 정도의 인생이 된 것은

서로 간에 대한 배려와 믿음이지 싶다.

저 사람은 최소한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저 사람은 최소한 나와 마지막을 함께 할 사람이라는 믿음.

 

30년이 넘는 세월

한 달 동안 가족들을 위해 고생했다고 매달 월급날마다

생선회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준비해 주는 아내의 배려.

잠 잘 못 자는 아내 새벽잠 깰까 봐

출근길에 불도 안 켜고 조용히 출근하는 남편의 배려.

 

요즘 주변에 이혼하는 사람이 참 많다.

회사에도 젊은 기혼자들 중 20% 이상이 이혼을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충분히 연애 기간을 가졌을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이혼이 많을까?

아마 결혼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결혼식 준비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 아닌지.

서로에 대한 배려 부족이 제일 클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식이 이혼을 하면 그 짐은 또 부모가 짊어져야 한다.

자식을 결혼시키면 끝날 줄 알았던 양육의 짐이 또 손주 양육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주변에 이혼한 자식으로 인해 손주 본다고

자신의 인생이 없어진 6~70대 노인들이 제법 있다.

손주 때문에 모임 한 번을 못 가고

심한 경우는 부부가 별거를 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한 부부의 이혼은 한 부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최소한 자식과 부모의 삶까지 바뀐다.

배우자에게 덕 보려는 마음 버리고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그리고 결혼생활은 혼자서는 뛸 수 없는 이인삼각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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