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2만 평이 넘는 산에 왜 천오백 평만 사과밭을 만들까?
이미 공사를 시작했는데 오천 평을 만들어도 되고 만평을 만들어도 되는데.
그땐 그냥, 지금 있는 사과밭 삼천오백 평에 천오백 평을 더 해서 오천 평의
사과농사를 지을 계획인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혹시 나 때문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의심은 있었다.
3년 전쯤 아랫 마을에서 양파 농사짓은 초등학교 동기가 말하길
"동생이 너 땜에 걱정이 많더라.
형님이 퇴직하면 귀향을 한다는데 뭘 준비해 줘야 할지 몰라서
사과밭이나 하나 만들어 줄까?" 하더란다.
그때 난 분명히 말했다.
"난 농사일할 줄도 모르고, 농사지을 생각도 없으니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래서 끝난 줄 알았다.
지난주 집 수리 때문에 방문한 고향마을에서 마을 아재의 이야기를 듣고 아차 싶었다.
그 사과밭은 동생이 나 준다고 만들었단다.
시골 살면서 일 없으면 못 사니 작은 사과밭이나 하나 만들어 줬단다.
지금은 전기도 끌어도 넣었고
지하수까지 파고 물탱크를 설치해서 시간맞춰서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졸졸 나온다.
워낙 시골이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집을 떠나 살았던 나는 농사일이 젬병이다.
해서 퇴직 후 귀향을 하더라도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었다.
할 줄도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상속받은 작은 땅에도 손 많이 안 가는 더덕이나 도라지 심어놓고
몇 년씩 시간 때우려 했다.
동생 사과밭 일이나 도와주며 시간 나면 산에 약초나 캐러 다니면서 살 생각이었다.
그래봤자 20년 안쪽의 삶이다.
팔십 넘으면 어차피 수족이 편치는 못할 터 살아도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하며
살 인생이니 욕심도 내려놓자 했었다.
그런데 동생은 내 노후 준비를 따로 하고 있었다.
난 힘들게 만든 그 사과밭을 받을 생각이 십 원어치도 없다.
동생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제수씨 볼 낯이 없다.
형이 얼마나 시원찮아 보였을지 민망하기만 하다.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과밭에 동생이 신비복숭아를 심을 때도 다른 곳에 황도 백도가 다 있는데
왜 또 복숭아를 심었지 했다.
금년 여름 나와 아내가 사과밭에 갔을 때 동생이 그렇게 좋아했다.
흙 묻은 손을 씻지도 못한 채 복숭아 몇 개를 따다가는 나와 형수 앞에 내려놓고 먹어보라고 재촉했다.
그 기막힌 신비복숭아의 맛이라니....
신비복숭아 좋아하는 형과 형수를 위해서 추가로 신비복숭아 4그루를 심었다.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을 입구 복숭아밭에 원두막을 가져다 놓고 수리를 할 때
우리가 여기 원두막에 쉴 일이 별로 없는데 왜 이렇게 하지 싶었다.
여름휴가 시 아침 운동시간마다 이곳에 잠시 쉬어가게 되고
지나가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잠시씩 쉬어가는 것을 보고
이래서 동생이 만들었구나 싶다.
복숭아를 손대는 사람도 있고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부처는 그냥 웃고 만다.
그런 마음으로 또 체리나무를 심었나 보다.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년에 시골집 마당을 다시 만들고 돌담을 쌓고 뒤안에 공사를 하는 것을 보고도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은 어차피 여기에 들어와 살 일이 없는데 왜 돈 들여서 저렇게 마당 공사를 하는지
왜 집 뒤쪽에 벽을 쌓는지 생각지 못했다.
결국 동생은 여동생들에게 집을 주기 위해서였다.
매제들이 아무도 그런 쪽에 일을 모르니 자기가 미리 수리를 다 해서 주려고 했단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니 내게 집을 팔면서도 돈을 안 받으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포크레인 기름값도 안 되는 고구마 농사를 짓고있다.
돈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남매들 조카들 이웃들 나눠먹어려고 하는 일이다.
그렇지.
한낱 미물이 부처의 마음을 어떻게 짐작이나 하랴.
'살아 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년 퇴직자를 위한 회식의 시작. (8) | 2022.10.07 |
---|---|
알아야 면장을 하지. (4) | 2022.10.05 |
귀향 준비 (6) | 2022.09.26 |
배내골 (6) | 2022.09.21 |
부부간의 믿음 (8) | 2022.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