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정지아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65년 생으로 많은 책을 썼지만 내가 읽어 볼 기회는 없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우리나라의 아픈 기억인 여수 순천사건에서 살아남은 이의
이야기를 소설화 한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 여순 반란 사건이라고 부르던 이 사건은 여수 순천 사람들이 아닌 군인들에 의한
사건이라 하여 뒤에 '반란'을 빼고 부르게 되었고, 사람에 따라서는 항쟁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작가의 경험이 들어간 것이긴 하지만 어디까지가 논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알 수 없다.
소설의 배경은 여수나 순천이 아닌,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했던 지리산이 올려다 보이는 구례다.
책을 읽고 나서 첫 느낌이
"아~~~"였다.
그 시절의 안타까운 삶들에 대한 먹먹함이었지 싶다.
후기를 보면 작가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 아리의 아버지면서 전직 빨치산이었던 사회주의자 아버지 고상욱은
이십 년 가까운 감옥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터를 잡았다.
소설의 시작은 아버지 고상욱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죽음은 거창한 명분이나 혁명이 아닌 머리 숙인 귀갓길에 서있던
전봇대를 박고 죽은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죽음이다.
소설은 장례식장을 찾은 손님들의 입을 빌려 아버지를 이야기한다.
빨치산 출신들의 이야기도 있고, 빨치산 가족을 둔 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의 생전에 맺은 인연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살아생전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의 대상이었던 빨치산 아버지가 빨갱이 딸에게 이해되는 과정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어 더 몰입이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당숙이 빨치산 활동을 한 덕분에 우린 모두 빨갱이의 조카였다.
이로 인해 우리들의 6촌 중에서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물론 지금이야 연좌제가 폐지되어 내 딸도 공무원을 하고 있지만 한때
빨갱이의 조카들은 많은 곳에서 제지를 당했다.
나라에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 어떤 사람의 행위로 인해 나까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을 하고는 무리에서 밀어냈다.
당시에는 당숙에 대한 원망이 참 많았다.
마을에 친척들 대부분이 그 당숙을 원망했었다.
그 당숙 또한 힘든 삶이었을 것이다.
어디를 움직여야 하면 반드시 파출소에 신고를 해야 하고
담당 경찰이 수시로 동태 파악을 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당숙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신 당숙의 산소를 매년 그의 아들인 6촌 동생과
벌초를 하면서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
소설은 재미있다.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말고 그냥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소설에 내 의견을 보태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후기 대신 그냥 소설에 있는
몇 대목을 남긴다.
"황 사장은 내 곁으로 다가와 주변을 훑어보고는 얼굴을 귓가에 바짝 붙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몸의 거리로 친밀감을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하기는 동물도 그렇긴 하다.
그 거리를 내각 허용하지 않고 살아왔을 뿐이다.
빨갱이나 그 자식들은 알아서 보통 사람들이 친밀하다고 허용하는 거리를 넘어서 있어야 했다.
그래야 누군가 빨갱이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당하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가 평생 당하고만 살지는 않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 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 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묻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다만 당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더 당했다. 아버지는 선택이라도 했지.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 딸이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겠다고 선택하지도 않았다.
태어나 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군들 빨갱이의 딸을 선택하겠는가.
나는 당연히 이부진이나 김태희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빨갱이의 아들로 태어난 황 사장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무엇에도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버지가 몇 마디 말로 정의해 준다 한들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 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평생 군인을 교련 선생으로 그리고 조선일보 애독자로 살아온 박 선생 같은 이와 빨치산 동료들은
아버지 외의 어떤 접점도 없었다. 아니 그 시절에 서로 총을 겨눈 사이였다.
아버지와 오래 마음을 주고받으며 지낸 사람들 사이에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축소판을 보는 기분이기도 했다.
다만 아버지의 지인들은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와는 달리 언성을 높여 성토하는 대신 서로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들 방식대로 아버지를 주도하는 중이었다.
묘하게 평화로웠다. 어쩌면 죽음으로써야 비로소 가능한 평화일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적당히 분주하고 평화로웠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치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결국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죽음으로서 완성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