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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폭설

by 머구리1 2023. 2. 10.

일기예보에는 말이 없었다.

그냥 예보상에 비가 오거나 약간의 눈이 온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산골의 날씨는 기상대 바램처럼 안 된다.

우리 마을은 애당초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함양읍에 눈이 안 와도 우리동네는 온다.

지리산 줄기인 까닥이다.

어제 저녁 10시쯤부터 시작됐지 싶다.

11시쯤 돼서는 점점 더 많아진다.

이미 바닥에 많이 쌓였는데도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결국 새벽 5시까지 눈이 쏟아졌다.

 
 

대략 20cm 정도다.

반대편 집에는 약 30cm 정도였다고 한다.

올 겨울 들어서 제일 많이 왔단다.

저녁 11시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양에 눈이 쌓이면 차양이 무너질 수 있으니 눈을 제거하란다.

우리집 차양

몇 년 전 우습게 알았던 쌓인 눈 때문에 다 키운 사과나무

100여 그루를 부르뜨렸다.

가벼워 보이는 눈도 뭉치면 무서운 것이다.

오늘 밤 눈이 딱 그 눈이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눈.

그래서 잘 뭉쳐지는 눈

애들이 눈싸움하기나 눈사람 만들기에 최적의 눈

그러나 이 눈은 잘 뭉쳐지기 때문에

쌓이는 대상에게 피해를 준다.

벌써 가까운 대나무 밭에서는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심상찮다.

마당 빗자루와 긴 장대를 이용해 한밤중에 옥상에서 쇼를 한다.

차양에 눈을 모두 제거했다.

햇빛 차단 및 마당에서 비를 막기 위해 설치한 우리 집 차양이

대략 12mx3m 다.

여기에 20cm 눈이 쌓이면 대상 계산해도 3톤이 넘는 무게가 된다.

습기를 머금은 눈이면 더 나갈 것이다.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눈이 오니 일단 경치는 좋다.

 

어디 딴 나라인 듯하다.

그러나 딱 그기까지다.

환상의 백색 풍경은 남의 일이었을 때 좋은 풍경이다.

눈 치울 사람이 나라면 이것은 그냥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쓰레기일 뿐이다.

아침 일곱 시부터 눈 치우기가 시작된다.

눈을 치워야 버스도 올 것이고 나도 움직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첫 차는 못 왔다.

 
 

각자의 도구들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이 눈을 치운다.

그래봐야 몇 안된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출근해야 하고 남은 사람들끼리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오후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제일 큰 일은 동생이 해 줬다.

큰길에서 마을 들어오는 길이 1km가 넘는데 이곳을

인력으로 할 수는 없다.

면사무소에서 지원해 준 장비가 있긴 하지만 관리자가

음주 운전에 걸리는 바람에 이 장비를 쓰지 못한다.

생각도 못했는데 동생이 포크레인을 끌고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년 포크레인으로 눈을 치웠단다.

단지 사람들에게 생색을 안 내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뿐이다.

이번에는 동네 아저씨가 대신 생색을 내줬다.

동생 덕분에 10시 버스는 시간 맞춰 들어왔다.

마을 회관 앞 공터를 다 치우고 마을에서 지안재까지를

모두 치워주었다.

마을 안길도 해 보려 했으나 경사가 너무 심해 포크레인이

미끄러져서 할 수가 없었다.

마을 안길은 인력으로 대신했다.

오늘 저녁에도 온 삭신이 아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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