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길에 고목이 된
느티나무가 보인다.
웃주막골 이라고 부르던 곳인데
이곳에서 멱도 감았고
어른들은 오가는 길 지게 쉼터로 삼았다.
추석이 와서인지 아침에는
나무 아래 그늘에서 쉬시던
부모님이 보였다.
너는 그대로구나.
60 년 전이나
그 전 60 년을 그랬듯이
넌 여전히 그대로구나.
네 앞마당을 파고
시멘트를 깔며 네 뿌리가 다쳐도
여름이면 왕매미에게
빈자리 하나 내주고
지나가는 온갖 새들에게
쉼터 내주는 너는 그대로구나.
네 앞 개울 넓힌다고
몇 날을 흐르는 물길 막고
포크레인 굉음을 울렸을텐데
넌 주름 한 줄 늘지 않았구나.
찬나무지 오가는 길
인생보다 무거웠을
내 아버지의 지게가
잠시 기댈 자리를 주고
함지에 새참 이고 가던
울 엄니 네 그늘에서 앉아
쉬던 한숨이 이제사 보인다.
천년을 살 것 처럼
아등바둥 사는 나를 보고
넌
옹이 구멍으로 피식
실소 보냈겠지.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있어왔듯이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 때까지
그자리 잘 지켜서
훗날
가을 잎 떨어지는 날
나 닮은 녀석 찾아 오거든
바람에 밀린 듯
작은 가지 하나 흔들어 주라.
2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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