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밀양에서 고등학교 반창회가 있었다.
반창회라기 보다 그냥 울산에서 가까이 살던 몇몇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90년도 쯤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우리는 김창옥 교수의 말대로 특목고 출신들이다.
외고나 과학고는 아니고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공고 출신이라는 얘기다.
공고의 특성상 대부분 1학년 때 같은 반 이었던
친구들이 졸업할 때 까지 한 반이다.
그중에서도 울산의 현대에서 근무를 하던
친구들 여덟이서 모임을 만들었고 중간에 한 명이 빠지긴 했지만
지금까지 잘 유지해 오고 있다.
현대자동차 3명 현대중공업 4명 현대정공 1명 이 시작해서
지금은 고물상으로 업을 바꾼 사람,
다른 곳으로 갔다가 소사장 하는 친구가 있고
자동차 출신 두명은 외주업체에 재취업을 하였고,
중공업 출신 두명은 같은 자리에서 촉탁으로 근무중이며
백수는 나 혼자다.
고물상 하는 친구가 자식농사는 제일 잘 지어서 아들 둘 다 의사로
결혼까지 마쳤고, 수원에 사는 친구는 아내가 부동산 전문가여서
지금 부자로 잘 산다.
다른 친구들도 다들 비슷하게 잘들 산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평생 총무겸 회장인 친구의 집에서 모였다.
이 친구는 울산에 사는 집이 있고, 퇴직 후를 위해서 이곳에 집을 지었다.
중공업에 촉탁으로 근무중인 이 친구는 손재주가 좋다.
이 집도 와이프와 둘이서 직접 지었다.
법원 경매에 나온 이 땅을 사서는 아내와 둘이서 직접 지었다.
바깥은 양옥이고 내부는 한옥이다.
아름드리 대들보도 둘이서 직접 올렸단다.
안에는 황토방에 구둘을 깔아서 뜨끈뜨끈한 방바닥에서
등을 지질 수도 있다.
밤에 봐도 멋지다.
이 정자도 직접 만든 것이다.
참 재주가 부러운 친구다.
주인 부부가 정구지 전을 한 상 준비해 놓았다.
수원에 친구가 민물장어를 가져와서 잘 먹었다.
술 땡겨서 혼났다.
좋아하는 술을 참으려니 모임이 고역이다.
저녁은 가까운 식당에서 주문한 능이백숙을 가져다 먹었다.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아흔일곱의 어머님 모시고 사는 친구와
다른 친구 부부는 돌아가고 남은 사람끼리 밤 늦도록 이야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줌씨들은 더 늦게까지 떠들었다.
다음날 가까운 만어사로 가을 구경을 나갔다.
만어사는 이 돌들이 유명하다.
예전에 만마리의 고기가 이 돌로 변했단다.
그래서 만마리의 고기가 있는 절이라고 만어사다.
멀리서 보면 물고기판 같기도 하다.
믿거나 말거나.
참 대단한 생명력이다.
아주 작은 갈라진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다.
어디가서 이짓 좀 하지 말자.
가까운 바위에는 전부 이렇게 낙서를 해놨다.
보는 사람마다 욕하는데 복을 받겠냐?
너무 큰 바위는 치우지 못한 것인지 이 건물로 덮고 부처님으로 모신다.
꽤 많은 사람들이 돌 앞에 돈을 놓고 절을 한다.
부디 소원을 들어 주시길.
참 솜씨들 좋다.
난 나무로도 이렇게 못 깍을 것 같은데 돌을 어떻게 깍지?
대단하다.
만어사 내려오는 길에 카페에 들려서 취향대로 차 한잔씩을 마시고 헤어졌다.
내년 봄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모임 중에 어느 여자분이 질문을 던졌다.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사람?
단 한명도 없었다.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고
그런대로 잘 살았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우스갯 소리로 부모님 용돈을 드리는 마지막 세대고
자식에서 용돈을 못 받은 첫 세대라는 얘기가 있을만치
힘든 세대긴 하지만 지금 30대ㅣ 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나 또한 30년 전으로 돌아갈 생각 십원어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