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형식의 시집이다.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통합된 언어의 울림, 운율, 조화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대한 이미지 등 회화적 요소를 통해서 독자의 감정 상태에 대한 정서나
호기심을 자극하게 하여 상상력과 배경지식을 높여주는 문학 작품의 한 형식이다
나무위키에 설명된 시에 대한 정의다.
꼭 백과사전이나 나무위키가 아니어도 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짧고 간결한 문장 함축된 의미의 단어 등 비교적 짧고 간결한
문학의 형식이라고 알려져있다.
이 시집은 어찌보면 수필 같은 조금은 특이한 형식이다.
일단 문장이 길다.
두 페이지는 기본이고 서너 페이지씩 나열되기도 한다.
금년에 출판된 책인 것을 보면 어떤 형식을 벗자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인지도 모르겠다.
시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뒤쪽에는
다른 시인의 해설집까지 더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촉진하는 밤을 옮긴다.
촉진하는 밤
열이 펄펄 끓는 너의 몸을
너에게 배운 바대로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느라
밤을 새운다
나는 가끔 시간을 추월한다
너무 느린 것은 빠른 것을 이따금 능멸하는 능력이 있다
마룻바닥처럼
납작하게 누워서
바퀴벌레처럼 어수선히 돌아다니는 추억을 노려보다
저걸 어떻게 죽여버리지 한다
촉진하는 밤
추억을 미래에서 미리 가져와
더 풀어놓기도 한다
능멸하는 마음은 굶주렸을 때에 유독 유능해진다
피부에 발린 얇은 물기가
체온을 빼앗는다는 걸
너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열이 날 때에 네가 그렇게 해주었던 걸
상기하는 마음으로
밤을 새운다
앙상한 너의 몸을
녹여 없앨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마침내 녹을 거야
증발할 거야 사라질 거야
갈망하던 바대로
갈망하던 바대로
창문을 열면
미쳐 날뛰는 바람이 커튼을 밀어내고
펼쳐준 책을 휘뜩휘뜩 넘기고
빗방울이 순식간에 들이치고
뒤뜰 어딘가에 텅 빈 양동이가
우당탕탕 보기 좋게 굴러다니고
다음 날이 태연하게 나타난다
믿을 수 없을 만치 고요해진 채로
정지된 모든 사물의 모서리에 햇빛이 맺힌 채로
우리는 새로 태어난 것 같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유격이 클 때
꿈에 깃들지 못한 채로 내 주변을 맴돌던 그림자가
눈뜬 아침을 가엾게 내려다볼 때
시간으로부터 호위를 받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것
참 좋구나
우리의
허약함을 아둔함을 지칠 줄 모름을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더딘 시간을
이 드넓은 햇빛이
말없이 한없이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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