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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하사 이야기

해군 하사 이야기 - 위장이 늘어나다

by 머구리1 2014. 6. 2.

6주 동안의 비 인간적이 대우를 무사히 뚫고 이제 해군 군생활의 천국이라는 후반기

교육을 받게 된다.

 

수료식을 하게 되면 버스나 트럭을 타고 해군종합기술학교로 이동을 하여 다시 직별별로 모인다.

나중에 직별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나는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내연사가 되었다.

하후 84기 내연(직별번호 42) 170기 이게 내 공식적인 직별 이다.

 

종합 기술학교에는 소대장들이 고참 상사 들이다.

훈련소에서 막 나와서 종합학교로 오면 소대장이 인원점검을 하고 당일부로 3박4일 휴가를 나간다.

그 당시 육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해군은 입대 6주 만에 휴가를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소대장이 전체를 모아놓고 주의 사항을 이야기한다.

귀대 시간,

나가서 조심할 점 등을 이야기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항목이 있다.

집에 가서 밥 많이 먹지 마라는 것이다.

"지금 귀관들의 위장은 아주 작게 쪼그라져 있다.

그런데 집에가서 갑자기 많이 먹거나 기름진 것을 먹게 되면 배탈이 나게 될 것이고

또 위장이 늘어져서 후반기 교육이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배가 등가죽에 붙은 생도들에게 이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이 말을 흘려들은 댓가는 4일 후에 엄청나게 크게 돌아온다.

 

아참 미리 말 하지만 우린 이미 훈련소에서 빵을 많이 먹었다.

 

훈련소에서 생활중에 이야기 안 한 것이 있다.

수료식이 끝나고 나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PX를 가게 해 준다.

그때 PX에는 앞서가는 해군답게 세트 품을 팔았다.

2천원을 주면 담배 한 갑과. 나머지는  50원짜리 빵으로 가득 채운 세트품을 준다.

밖에서 빵 하나에 5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군대에서는 50원도 안 했지 싶다.

어찌 되었던 엄청 많이 준다.

약 20개 정도는 되었지 싶다.

배고픈 생도들은 또 대부분이 이것을 사 먹고 또 6주 만에 즐기는 담배의

황홀함에 빠진다.

그 많은 빵을 남 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개 50원

 

 

 

 

 

소대장님의 훈시가 끝나면 바로 휴가가 실시된다.

장복산 검문소에서 휴가증을 보여주고 헌병대를 통과하고 나면 이제 내 세상이 펼쳐진다.

오전에 훈련소에서 이미 많은 빵을 먹었지만 내 뱃속에 거지는 아직까지 계속 콜을 한다.

결국은 마산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빵집에 들러서 케잌 하나를 더 사서 먹는다.

오전에 단팥빵을 실컷 먹었지만 또 금세 케익 한 개가 내 뱃속으로 다 사라진다.

 

이런 고급스러운 거 말고..

그냥 값싸고 양 많은 것.

 

 

 

 

그리고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여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대문 앞에 노기 띤 얼굴로 앉아 계신다.

 

지난번에 얼핏 이야기했지만 직업군인을 반대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군대를 갔는데 그 사이에 어머니께서 알아 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얼굴에 노기가 잔뜩이다.

-나가라..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너 혼자 부모를 무시하고 갔으니 네 맘대로 살아라..

 

미칠 노릇이다.

그 와중에도 어머님의 노기보다 더 간절한 것은 배고픔이었다.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았다.

 

어머니께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대치했나 보다.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니 들어오라 신다.

남의 집 들어가듯이 쭈뼜쭈뼜 들어갔더니 어머니께서 진수성찬을 차려 내 오셨다.

밥 두 그릇을(두 공기가 아닌) 게 눈 감추듯이 해 치웠다.

 

 

고봉밥이라고 들어 봤나?

양푼에다가 이렇게 먹었다.

 

 

정신없이 두 그릇을 먹고 나서야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아무 말없이 눈물만 닦고 계신다.

 

어머님 기분을 헤아리지 못했다.

군대에 돈 벌러 간 놈이 집에 오자마자 저렇게 밥을 퍼 넣고 있으니

그 심정이 어땠을까?

그때는 어머님의 눈물도 잘 안 보이더라.

 

아버지는 처음부터 멀찍이 계시면서 쳐다만 보고 있다.

뱃속에서는 끊임없이 더 주라고 난리인데, 더 이상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더 먹으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배 부르다고 거짓말로 대답하고 마당으로 슬쩍 나갔다.

 

저녁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부모님은

피곤할 텐데 쉬라고 하시고 다른 방으로 가셨다.

그런데 밤이 늦어지자 또 배가 고파 잠이 안 온다.

훈련소에서는 그렇게 잠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오로지 배고픈 생각뿐이다.

 

소리 안 나게 살째가 부엌으로 가서 라면을 끓인다.

라면 3개를 끓여서 게눈 감추듯이 해 치우고 보니 국물이 아깝다.

밥 두 공기를 또 말아서 후루룩 흡입한다.

이렇게 많이 먹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라면 세 개가 이 정도 될라나...

 

 

 

 

오늘 하루 먹은 것 다 해보면

훈련소에서 아침, 그리고 2천 원짜리 빵 세트, 케익한개, 점심. 저녁밥 두 그릇, 라면 세 개, 밥 두 공기..

이게 60kg밖에 안 나가는 인간이 하루에 먹은 량이다.

 

다음날도 역시 부모님이 해 주신 밥을 두 그릇씩 후딱 해 치운다.

그리곤 부모님이 들에 나간 틈을 타고, 마을 구판장에 가서 50원짜리 빵을

천원치씩 사서 먹는다...

한 끼에 이렇게 먹는 것이다.

이 생활을 3일 동안 계속했다.

결국 마지막 날 아침에서야 종합학교 소대장이 말한 내용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뛸 수가 없다.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도 힘이 든다.

그새에 위장이 늘어나서 얼마나 아픈지 움직일 때마다 영 죽을 맛이다.

 

그래도 부모님 앞에서는 표를 못 낸다.

괜한 일로 부모님 걱정 끼치는 게 싫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그 며칠 사이에 화가 풀리셨다.

하긴 그 화가 내게 나신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식이 군대에서 돈을 벌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한 당신들께 화가 나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결과적으로는 내가 직업 군인 선택한 게 잘 된 결정이었다.

바로 아래에 동생이 콩팥에 병이 와서 돈이 많이 들어갔는데 다행히

내가 군대에서 돈을 버는 바람에 동생 치료비를 댈 수가 있었다..

 

몸이 너무 많이 부어서 택시에 구겨서 넣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았던

그 동생은 다행히 완치가 되어서 지금 고향에서 잘 살고 있다.

형이나 형수라면 자기가 가진 좋은 것은 다 주고 싶어 하는 좋은 동생이다.

 

이 늘어진 위장은 후반기 교육 시 약 한 달 정도는 고생을 했다.

다른 동기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늘어난 위장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천국의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