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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하사 이야기

해군 하사 이야기-대강 철저히

by 머구리1 2014. 6. 26.

 

대강 철저히

 

군대 생활 요령을 제일 잘 표현한 말이 이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에서도 이 요령이 필요할 경우도 있겠지만 대강 철저히라는 것은 군대에서

더 제격이지 싶다.

 

듬성듬성 해도 빠진데 없이'라는 뜻으로

어떤 것은 대강 대강 하면서 또 어떤 상황에서는 철저히 하라는 것.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다 잘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뒤에 따라오는 철저히는 옆집 바둑이에게 가져다줘 버리고

대강만 자기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

 

수병들이 3년을 군대 생활하면서도 보통 한번 정도는 근무지를 옮긴다.

특히 고속정은 근무 환경 때문에 36개월 이상 계속해서 승조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난 제대할 때까지 4년 정도를 계속 한 배만 탔다.

그것도 고속정만...

 

Why?

 

난 후반기 처음 군대 생활 시작할 때부터 말뚝을 박을 생각은 없었다.

군대에서 버리는 시간 3년이 아까워서 직업 군인을 택했지만 평생을

군인으로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급이 준위인데, 그 준위는 소위 아래다.

 

실무에 나가서 자대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짬밥이 늘어나면서 

아 이건 아닌데 라는 일들이 자꾸 생기면서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고,

그대로 만기 제대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선택은 후회가 없다.

 

내가 실무 생활하면서 만기 전역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군대의 골 때리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열심히 하는 놈이나 탱자 탱자 하는 놈이나  대우는 똑같더라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더 많다.

 

 

 

 

지금부터 내 자랑이다...

sorry!!

 

예나 지금이나 내 생활신조는

내가 하는 일에 최고가 되자 는 것이다.

 

그래서 실무 배치받고 한 달쯤 되었을 때부터 기관실 바닥을 뒤집기 시작했다.

기관실 바닥에 깔린 각종 PIPE LINE을 보기 위해서다.

 

기관실 바닥에는 엔진 구동 및 각종 펌프 기타 보조 기기들을 위한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깔려있다.

 

그 파이프를 보려면 기관실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알루미늄 판을 들어내야 하는데

접시 머리 볼트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들어내고

끝나고 나면 나중에 일일이 조립해 줘야 한다.

 

고속정 기관실이다.

 

 

 

한 번은 이 판을 전부 뒤집어 놨다가, 갑자기 긴급 출항 걸리는 바람에

기관사와 내연장에게 디지기 깨진 적도 있다.

 

내연사가 이 파이프를 알아야 되는 이유는 엔진이나 기타 다른 기계에서

고장이 나면 그 라인을 찾아서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우리 배에는 이 파이프 라인을 그려놓은 도면 한 장이

없었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문제가 터져도 어느 밸브를 손을 대야 하는지도 몰랐다.

 

대부분 1년 정도 근무하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다 보니까

나 있는 동안만 사고 안 터지면 되는 것이다.

 

파이프를 찾아서는 기관수병 한 명을 데리고 각 라인별로 페인트를 했다.

해수 파이프는 녹색

청수 파이프는 청색

연료유 파이프는 붉은색

윤활유 파이프는 회색인가를  칠하고

공기 라인은 흰색인가 노란색인가를 칠 했던 것 같다.

 

색깔을 다 칠하고 나서는 각 액체들이 흐르는 방향대로

화살표까지 그려 넣었다.

 

지금은 모든 군함에 이런 게 되어 있을 거다.

일반 기업체에도 다 되어 있다.

 

그리고는 각 라인별로 전지 정도 되는 골판지 4장을 구해다가

그 위에 하얀 종이를 대서 각 파이프 라인들을 칼라로 그림을 그렸다.

 

중간에 있는 밸브까지 해서 누가 처음 와서 봐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그렸다.

그리고는 기관실에  비닐을 씌워서 4장의 그림을 걸어 놓았다.

 

나중에 이것 가지고 사령관 표창도 받았다.

 

이것을 다 해놓고 나자

정장이나 기관장 기관사들이 눈이 뒤집혔다.

이런 놈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와서 길어야 2년 아니면 1년만 고속정 타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시간만 때우다가 간다.

 

별 희한한 놈을 다 본 것이다.

 

그다음은 후타실에까지 손을 뻗쳐서 조타기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조타기의 작동 원리는 간단한데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 보니

조금만 고장 나도 허둥대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리고 나니 함정 내부에 모든 라인이 머릿속에 들어 오더라..

 

 

그런데 결국 이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때 맞춰서 나보다 두 달 먼저 온, 한기수 선임인  내연사는 무조건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로

군대 생활의 요령을 잘 파악하고 있는 친구였다.

(미안 S 하사)

 

이 친구는 술, 훌라, 운동 이런 잡기는 능한데 본연의 업무에 들어가면

눈을 감아 버린다.

 

그게 처음에는 고문관 소리 들을지 모르지만 두고두고 편한 군대생활을 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나중에 자기가 직별장이 되면 주변에서 깔본다.

 

 

함정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내연사 한 명 받은 놈이

영구 같이 "잘 모르겠는데요" 만 읊어대고 있는데

두 달 뒤에 들어온  한놈이 군바리 같지 않게 제법 똘똘한 거다.

보수 교육  성적도 그냥 괜찮다 싶으니까

왜 이런 놈이 큰 배 가서 진급 안 하고

해역사로 와서 고속정을 타는지 궁금했을껴.

 

어느 순간 기관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일이 나 한테로 오더라.

정장이고 기관장, 기관사까지 다 내게 떠 넘기고는

나만 쳐다보는 것 같더라.

 

어떤 때는 경비 뛰고 와서 다른 놈들은 다 자는데 난 잠도 못 자고

아침까지 엔진 정비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수리를 해 놓고 쉬어야 한다.

긴급 출항 때문에...

 

그러다 문제 생기면 다 내가 잘못한 것으로 되고..

 

결국은 나중에 PMS 서류 정리와 모든 점검 준비까지

다 내 일이 되어 버렸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가 나를 점점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 족쇄는 결국 내가 발령을 못 가는 원죄가 되었다.

정장들이 후임 정장들에게 인계를 하는 것이다.

 

장교들이나 직별장 들은 보통 1년을 타면 발령을 나간다.

그러면서 후임 정장이나 기관사에게 인계를 하고 간다.

 

"야 네가 편하려면 배하사 저 새끼 발령 보내지 마라"

 

지들은 좋은 곳 찾아가면서 나한테는 주야장천 뽑지도 못할

쇠말뚝을 박고 갔다.

 

열나게 부려 먹었으면 데리고 가던가.......

난 이것을 한참 뒤에 알았다.

 

 

나중에 이야기할지 모르겠는데 해역사 사령부에서

한번 미쳐 날뛰기 전에 

하도 발령이 안 나서.. 

전대 인사 담당관한테 찾아가서 왜 발령을 안 보내 주냐고 물었더니

 

네가 발령 나고 싶으면 전대장(대령이다) 결재받아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포기했다.

어차피 말뚝은 포기했으니까.

일 년만 더 게기면 전역인데 뭐..

 

 

그런데 엉뚱하게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말뚝 박으라고 부추겼다.

-야 너 군대 체질이다. 말뚝 박아라.

 

난 속으로 살째기 이야기했다.

좃까 잡숴! 니가 박아라 말뚝!

 

이렇게 잘 부려 먹었으면

진급이라도 시켜 줬으면 또 맘 변해서 군대 생활 계속했을지도 모른다.

 

 

이놈의 동네는 모든 게 짬밥 순이다.

 

처음 진급 대상 되었을 때는 진급 시험 치러도 못 갔다.

위에 선임들이 기합 빠졌다고 눈치를 하는 바람에..

 

40기 60기 69기 하사가 가 있는데 내가 무슨...

 

-야 임마 네가 나보다 먼저 중사 달고 싶냐?

 

 에효~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니기미..

 

그다음 해에는 진급 시험을 치러 갔더니 옆과 뒤에 앉아서는

커닝시켜 달라고 또 지랄지랄 해서

도저히 시험도 못 치겠더라.

 

그래 놓고 자기 진급 시험 떨어지니까

나보고 공부 안 했다고 지랄지랄 한다.

아니 지들 진급 공부를 왜 내가 해야 하는겨?

 

그래서 진급이고 말뚝이고 다 포기했지..

어차피 한 배에 저렇게 차이나는 고참이 있으면 진급은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

 

다음 해부턴 진급 시험 치러도 안 갔다.

이런저런 핑계 대고..

잘했지?

 

약간의 혜택도 있었다.

경비 뛰고 오다가 어떤 문제가 생겨서 해결한 날이나

엔진에 트러블이 생겨서 고생을 하고 나면

야간에 순검 끝나고 또는 경비 후에 기관장이나 정장이 사관실로

살짝 부른다.

그럼 고기 안주에, 군용 양주지만 제법 접대도 받고 한다.

 

태풍 오는 날이나 황천으로 배 못 나가면 외박도 잘 보내준다.

덕분에 그 당시 현대에 다니던 친구 들과 술 신나게 먹었다.

옥교동, 반구동, 방어진까지 가서...

 

어느 날  사령부에서  갑자기 미쳐서는

하늘 같은 기관사하고 붕붕 날아다닐 때도

다른 사람 같으면 영창이 아니라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겠지만

좀 두들겨 맞고 용서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이미 군에서 마음이 떠나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런 혜택이 없고

또 열심히 한 것이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곳이라면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군대라는 곳이 인간의 발전을 철저하게 막는 구조였다.

계급이나 호봉으로만 구분이 된다.

임금이던, 혜택이던...

그 사람 능력이나 성실함에 상관없이

계급이나 호봉으로만 모든 게 결정된다.

 

선임이 깡패다.

 

사회에서 밤새 일을 하면 돈도 주고

진급도 시켜 주지만

군대에서는 밤을 새워서 정비를 해도

내 일만 자꾸 더 늘어났다.

 

차라리 족구 잘하고

훌라 잘하는 놈이 훨씬 더 대우를 받더라.

 

그래서 군대 생활 잘하는 방법은

 

 

대강 철저히

 

..

 

 

 

대단하다. 

 

 

 

 

 

 내 새끼는 어디에 속할까?

 

 

 

 

 

잔머리는 정말 잘 돌아간다

 

 

 

 

제대로 박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