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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하사 이야기

해군 하사 이야기-반란

by 머구리1 2014. 7. 1.

 

 

이제 웬만큼 다 되어 가나 보다.

별 특이하지도 않았고, 타군에 비해 고생스럽지도 않은 군대 생활이

하나하나 풀어보니 제법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내가 이럴진대 진짜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의 군대 이야기는 어떨까?

이러니 남자들이 군대를 평생 울궈 먹는 것이겠지?

 

 

 

이번 글은 참 부끄러운 고백이다.

 

진해에 수리를 들어갔다가 해역사 사령부에서 대기 중이었다.

기지로 빨리 내려 가야 하는데 파도 때문에 며칠간 묶여 있었다.

진해에 수리후에는 항상 해역사 사령부에 들어가서 전대장에게 신고를 하고

특별히 바쁘지 않으면 그곳에서 2~3일 머무르다가 기지로 이동한다.

 

군대라는 곳이 파도 때문에 묶여 있다고 해서 지화자 좋다고 마냥

놀려 주지는 않는 곳이고. 특히 사령부다 보니 여러가지로 신경 쓸 일들이 많다.

사령부에는 해역사 사령관부터 전대장까지 있기 때문에 장교들의 경우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각 기지로 가면 지들이 대빵인데 뭐.

 

해서 다들 울산으로 빨리 가기롤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특히 울산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정장이나 직별장 들은 그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

 

실제로 정장은 전대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리해서 울산으로 가려고 하다가

해운대 앞바다에서 회항을 하였다.

해운대 앞쪽까지 갔는데 얼마나 파도가 치는지 침실 침대위에 누워있는

직별장들 몸이 붕붕 떴다.

물론 나머지 사람들도 뱃멀미에 식겁을 하고...

나도 그날 죽는줄 알았다..

속으로 정장 욕 엄청 했지..

 

지난번에 이야기했지만 해군이라고 해서 뱃멀미 안 하는 것 아니다.

파도 심하게 치면 다 배멀미 한다.

 

이 정장이, 

얼마나 마누라가 보고 싶었는지 그 황천에 무리하게 나갔다가

회항하고는 전대장한테 불려가서 욕 바가지로 먹었다고 들었다.

 

정장을 위시한 직별장들이나 장교들이

집에 가지 못하는 스트레를 많이 받다 보니

그 짜증이 아래로 고스란히 내려오는 것이다.

별 일도 아닌데 트집을 잡아서는 집합을 시키고 굴린다.

죄목은 항상 기합이 빠졌단다.

니미럴 고속정에  빠질 기합이 어디 있다고...

 

나도 이때는 신입이지만 영외거주 시절이었다.

즉 일이 없으면 퇴근이 가능한 정식 공무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퇴근은 고사하고 매일 위에 기관사의 짜증을 받아 주어야 한다.

 

지들은 저녁마다 밖에나 나가지...

실제로 직별장 들은 퇴근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서 한잔씩 걸치고 들어온다.

디기 급한 사람은 울산 집에까지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나도 영외 거주자 신분이니 퇴근이 가능한데도

기관실 맡길 사람이 마땅찮으니 난 퇴근을 못하게 한다.

물론 영내 하사나 수병들은 더 힘들었겠지만..

 

결국은 일요일에 사고가 터졌다.

 

예전에도 일요일은 출동이 없으면 보통 자유 시간이었다.

특히 영외 거주자 신분인 나 같은 경우는 밥을 먹던 잠을 자던 터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짜증이 가뜩 낀 기관사가 아침부터 기관실에 집합을 시킨다.

 

이때, 난 발령을 내주지 않고 계속 고속정을 태우는 것 때문에 전대 인사계와

면담을 해서 발령이 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을 때다..

(정장들이 인수인계를 해서 내 발령을 막고 있었다)

 

기관실에 엔진 워밍을 위한 히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게 가끔 한 번씩 고장이 난다.

고속정의 엔진이 고속 엔진이기 때문에 차가운 상태에서 갑자기

부하를 올리면 엔진에 무리가 가는 관계로 엔진의 냉각수를 뜨겁게 데워서

항상 엔진 온도를 60도 이상인가로 유지시켜야 한다.

 

그래야 긴급 출항 시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게 운항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함정 기관실에는 여름에 엄청 덥다.

 

그런데 이 히터가 노후가 되다 보니 한 번씩 작동을 잘 안 한다.

히터가 안 되면 수리를 하면 또 끝이다.

 

결국은 집에 못 가는 스트레스를 이 히터 핑계로 푸는 것이다

 

휴일 아침 늦잠을 즐기다가 기관실에 집합을 했더니

일장 훈시가 길다.

 

그냥 집합시켰으면 빠따 몇 대씩 얼큰하게 치고,

정리를 하면 좋으련만 끝도 없는 잔소리와 욕,

그리고 대가리 박아가 계속된다.

기관사가 시키니까 박기는 하지만

영외 거주 하사가 수병들 보는데서 좁아서 자세 안나는 기관실에 대가리

박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1시간 정도가 지나니까 내 속에서 뭔가가 자꾸 올라오려고 한다.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요...

노래가 자꾸 길어집니다.

2절 3절 계속하면 사고 칩니다.

 

이때까진 속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분은 끝낼 기미가 안 보인다.

 

아마 이분도 어젯밤에 마신 술이 덜 깬 것 같았다.

 

눈이 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순간적으로 눈에 뵈는 게 없더라..

 

"좃 같아서 도저히 못하겠다.. 씨발"

고함을 치면서 기관실을 빠져나와서 중갑판으로 올라왔다.

다른 사람이 말릴 새도 없었다.

갑판상에 지주대 한 개를 빼서는 닥치는 대로 두들겼다..

 

기관사가 따라 나왔지만 이미 눈이 돌아 버렸다.

이제 두 사람이서 같이 날아다닌다.

나는 그냥 한 마리 미친개가 되어 있었다.

 

-나 영창 좀 보내 줘

-더 이상 이 좃같은 배 못 타겠다

-니들이 나 발령 못나게 했으면 챙겨라도 줘야 할 것 아니가

-왜 죄 없는 사람 못살게 구냐?

-새 신발, 헌신발, 개발, 소발, 닭발..

아마 세상의 욕은 다 나왔지 싶다.

 

일어 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기관부 하사가 평소에 아버지라고 부르는 기관사에게 엉긴 것이다.

 

절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내 후임들이 보는 곳에서 개인적인 일로

선임에게 엉기는 짓을 해서도 안 되고..

또 자신의 직별장은 아버지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해군에서는

더욱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눈이 돌고 나니 이런 이 성적이 생각이 없어지더라.

제발 영창 좀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면 고속정 내려서 육상근무할 수 있으니까...

 

결국 배안에 정장 및 장교, 직별장들이 모두 달려 나와서

미친놈을 붙잡았다.

그리곤 꽁꽁 묶어서는 후타실로 던져 넣더라..

 

일단은 사령부에 높은 사람이 보면 안 된다.

그럼 문제가 커지니까...

 

미친놈처럼 날뛰는 개 한 마리를 넣어 놓기는 후타실이 최고다.

문 닫아 버리면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잠시 뒤 정장과 장교들이 들어왔다.

꽁꽁 묶여 누워서 발버둥을 치는 미친개에게 강제로 양주를 입에 붓는다.

그냥 마셨다.

마신다기보다는 그냥 넘어 들어 간다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군용 양주 맛없다.

사래가 들려 가면서도 그냥 붓는 대로 마셨다.

미친개가 뻗을 때까지 양주를 부어대던 장교들은 결국

미친개가 조용해지자 멈추었다.

나도 그 뒤론 기억 없다.

 

하루인지 이틀인지를 그곳에 묶여 있었나 보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니까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다른 것 다 버려두고라고,,, 기관사에게 엉긴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는 짓이었고..

 

나중에 결국 각 장교 및 직별장들에게 돌아가면서 사과를 드렸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욕하면 욕하는 대로 들으면서...

 

사실 이 사건은 정식으로 처리하면 영창 가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대일로 한 것도 아니고

다른 부대원들이 보는 곳에서 한 행동이기 때문에

어쩌면 정식 군사 법정으로 갔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장 스스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묻었는지

아니면 평소에 그래도 내가 잘해서 인지는 몰라도

그냥 없던 것으로 하게 되었다.

 

기관사와는 며칠 후 울산으로 귀항 후 일대일로 술집에 가서 풀었다.

세워 좋고 양쪽 뺨을 얼얼할 때까지 치더라..

깩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맞고는

그날 저녁 둘이서 기절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렇게 또 내 스물여섯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오빠! 택배 왔어!

 

 

 

 

 

회사로 온 택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