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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아버지의 지게(여성시대 방송 편)

by 머구리1 2016. 4. 26.




MBC 여성시대와는 궁합이 잘 맞는지 응모하는 원고마다 100% 채택이 된다.

채택이 되었다는 사전 예고도 없었는데 방송이 되었다고 회사 동료가 알려주었다.


아버지의 지게!




아버지가 살아 계실적에, 항상 집에는 아버지의 지게가 있었습니다.


아니, 집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시는 곳에는 분신처럼 항상 지게도 같이 따라 다녔던 것 같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5남매를 두셨더랬습니다.


저는 고모 할머니 한분을 포함해서 나머지 세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다 기억하는데


유독 제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뵙지 못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다 오래 사셨는데  제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단명하셨죠.


 


아버지 8살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돌아 가셨다고 다고 합니다.


그 전부터겠지만 아버지의 어깨에서 지게가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 어린 어깨에 매달려 평생의 멍에가 되었던  아버님의 지게는


몇번이나  새것으로 바뀌었겠지만 ,


마지막 돌아가실때까지도 항상 아버지의 옆을 지켰습니다.


아버지는 경운기를 가져 갈때도 항상 지게를 얹어서 같이 움직였었죠.


 


그 등에 지게를 평생 못 벗으신것은 아마 가족때문이었겠죠?


자신의  다섯 자식을 위해, 고통스런  지게를 벗지 못하셨을 겁니다.


자신의 어깨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다 혼자서 짊어 졌더랬습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집안의 막내였던 아버님의 지게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국민학교 중퇴가 최종학력이신 아버지께서는 남들이 학교가는 시간에 지게를 지고


들로 산으로 나가셔야 했습니다.


8살이 안 된 가려린 어깨에 당신의 힘든 삶을 채우기 시작 하셨던 거죠.



그러다가  똑 같이 가난한 집안의 둘째딸이었던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하셨고


결혼을 하고서도 한참을 큰 형님집에서 지게질을 계속 하셨죠.


장남이 부모와 맞잡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보니,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4형제의 막내이셨던  아버지께 돌아올 재산은 없었습니다.


결혼후에도 머슴살이를 몇년간 한후,


제가 태어날때쯤  가재가  발씻을 산속 돌밭에, 논 한마지기를 가지고 살림을


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없는 살림을 시작한  아버지에게 밑천은 지게 밖에 없었습니다.


170cm가 되지 않는 왜소한 체격이지만 아버지는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셨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 하셨습니다.


아마 마을에서 농사일을 제일 잘하는 분이셨을 겁니다.


 


자식들 한테는 가난을 대 물림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은 동네사람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셨죠


제가 진주로 고등학교를 가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를 미친놈이라고 불렀습니다.


교육열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던, 지리산 산속의 내 초등학교 동기 열 여섯명중에


중학교를 간 사람은 대여섯밖에 없었고,


고등학교를 간 사람은 거기서 또 반 정도 밖에 안 되었던 시절이니까요..


국민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남의집 식모로 또는 공장으로 돈벌러 가서


열심히 집으로 송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그네들의 눈에는 마을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집에서, 진주까지 유학을


보내는 제 아버지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을겠죠.


 


제가 고등학교를 가면서 아버지의 지게는 더 무거워졌습니다.


비록 등록금이  공립기계공고였지만 시골의 아버지에게는 참 큰 짐이었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아버지께서는 제 앞에서는 숨 가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꽤 공부를 잘했던  장남이 집안 형편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가고


공고를 간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어느 겨울날이었던  같습니다.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해 오다가 숨이  끊어질 듯 힘들게  산 중턱에 올라서 지게를 받쳐놓고


가쁜 숨을 쉬고 있을때 저를 쳐다보던 아버지의 얼굴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제 얼굴을 보고 아무말없이 담배를 빼 물던 아버지께서는


어느 순간 눈시울이 빨개져 계셨습니다.


그리곤 말없이 제 머리를 쓰다듬더군요.


 


시간이 흘러 가면서 4명의 동생들도 아버지의 지게에 올라가기 시작 하면서 아버지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 졌습니다.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지게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가면 숨이 막힙니다.


어깨를 파고 드는 지게 멜빵의 고통은 막히는 숨을 잊게  합니다.


아버지는 그 지게의 고통을 평생 안고 가셨습니다.


 


그 지게의 고통을 벗어날때쯤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습니다.


간다는 이야기도 없이


어떤 언질도 없이


어머님이 떠난지 딱 일년만에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 가셨습니다.


추석 휴가가 끝나고 자식들이 다 떠난 음력 822 자식하나 없는 빈집  마당 작은 비닐 하우스에서 고추를 말리시다가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까지도 자식들의 짐을 지고 가고 싶었나 봅니다..


자식들의 지게에 짐이 될듯 해서일까요?


그 짐을 당신 스스로 지고 가셨습니다.


 


내게 한번이라도 당신의 짐을 제게 주셨으면,


한번이라도 지게 없는 홀가분한 인생을 가졌었다면,


제가 조금은 덜 후회 할것인데...


자식을한테 짐이 될까봐 그렇게 급히 가셨습니다.


 


지금 시골집에는 지게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져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보고 싶듯


한번씩 아버지의 지게가 그립습니다.


 


이제 지게 없는 곳에서 편하게 쉬고 계실 아버지가,


오늘 참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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