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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는 이야기

깨달음의 길 오도재(오도재와 지안재 주변 설명)

by 머구리1 2019. 8. 26.

이 글은 함양군 홈페이지에서 김윤국 씨의 글을 기초로 하여 작성된 글이며

청색으로 된 가는 글씨체로 된 부분은 내가 임의로 첨언한 것임.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임

 

제1관문!

뒷쪽이 함양군 마천면 등구고

앞쪽은 휴천면 월평이다.

제1관문 기준 왼쪽이 법화산(약 2시간 소요) 오른쪽이 삼봉산(약 3시간 소요)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1158~1210)지눌과
조선시대 청매선사(1548~1623)인오는
오도재를 넘다가 도를 깨닫고 기쁨의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하여 깨달음을 
얻은 길이라햐여 오도재라 불려지고 있다.

 


청담선사의 오도송인 십이각시 (十二覺時,각자가12번들어가는시)

 

 

覺非覺非覺. 각비각비각

覺無覺覺覺. 각무각각각 

覺覺非覺覺 각각비각각

豈獨名眞覺. 기독명진각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이어                       
깨달음을 깨달은 것이네                                               
깨달음은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하리오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이어
깨달음을 깨달은 것이네
깨달음은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하리오 

 *이 글은 오도재에 돌에 새겨져 있다.

 

다른 시 비들도 있다.

 




1472년 8월 지리산 등정에 나섰던
김종직은 귀로에 오도재를 넘으며
'엄천사에 자다' 라는 시를 남겼다.

엄천사에서 유호인, 임대 등 함께
세 사람이 차를 달여 마시며 청담으로 
회포를 풀었다고 한다.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 역시 1489년 4월 
오도재를 넘어 지리산 등정에 나서며 
두류시를 남겼다.

푸른 물결 넘실넘실
노 젓는 소리 부드러워
소매 가득 찬 맑은 바람 
가을 인양 서늘하다
머리 돌려 바라보니 정말
그 모습이 아름다워 
한가한 구름은 자취 없이
두류산 넘어가네 



 오도재는 지리산으로 찾아드는 길목의
하나로 함양읍에서 마천으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해발 773미터로 마천 가흥과
휴천 월평 서쪽의 법화 산허리 지점에 있다.
지난날 제한역이 있던 조동마을(옛 지명이 지안 마을 임, 즉 제한=지안)에서
지안재를 넘어 살구징이(휴천면 월평리)를 지나
오도재를 넘고 지리산 장터목을 지나
하동포구로 들어가는 물산의 길이기도 하였다.

 

 

아래 산신각 내부에 있는 오래된 비석은 최소한 60년 이상 된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적부터 비석은 있었고, 지금도 누군가 치성을 드린 흔적이 있다.

외부 건물은 근래에 지어진 것이다.

 

 

 
오도재의 역사는 그 옛날 가락국까지 올라간다.
가락국 제10대 왕인(마지막 왕) 구형왕은
서기 532년 신라군에 쫓겨 제한역을 지나 -제한역이 현재의 조동(옛 지명 지안)인 듯)
오도재에 올라 촉동에 대궐을 짓고 살려했으나 
지세가 좁아 추성으로 들어갔다가 산청
화개 왕산 밑으로 옮겼다고 한다.

(여기서 화개는 하동군 화개가 아니라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화개를 말함)

 

오도재 주차장에서 본 아래 길. 예전에는 개울을 따라서 좁은 산길이 나 있었다.

 


제한 역(조동) 근처에는 9만의 대군이 머물렀다 하여
구만동이(현 구만마을) 생기고 활을 쏘고 무술을 연마하던 자리는
할개미란 지명이 생기기도 하였다. (할개미는 현 인월 함양 간 국도에서 오도재길로 갈라지는 삼거리)

(활을 감는다-->활개미-->할개미)

할개미 위쪽 원구(구룡마을)는 고구려와 백제에 구원병을 요청한 곳이라고 하여

원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현재 촉동에는 빈대궐터(빈대골이라는 옛 지명이 있음)가 남아있고 
추성에는 석성과 대궐터와 뒤주터등 흔적과 
마을이 남아있다.

 

은 사람들이 오도재라고 잘못알고 있는 지안재!

저 아래쪽이 예전 제한 역이고 불렀던 지안 마을(조동)이다.

이 길이 나기 전에 지안재는 꽤 높았고, 함양읍 조동마을과 휴천면 월평마을의 경계산이었다.

 

 

 


이밖에도 오도재에는 신숙주의 두류산 바라보며,
일두 정영창의 두류산책, 고은 최치원의 청산 경불환,
구졸암 양희의 지리산, 감수제 박여랑의 천왕봉을 다녀와서
등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제일문공원 바로 아래에는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이야기 장승공원이 있다.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장승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다 썩어서 쓰러지고 몇 개 남아 있지 않다.
오도재 지리산 제일문을 지나 조망공원에 도착하면
지리산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지리능선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지득정에 올라 지리능선을 조망하고
면암 최익현의 천왕봉을 바라보며 라는 시비를 바라보며
시를 읊조려 본다

하늘과 땅과 풀이 

그 어느 해에 처음 열려서
두류산을 준비하여 저 하늘 떠 받치 있는가
층계진 언덕 그늘에서는 

봄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에
산아래 구름 끼니 낮인데도 잠을 자고 싶구나
해와 달을 우러르며 

고개 돌려 얼굴을 찡그림이여
산과 물을 관할하니 모두가 내 앞에 엎드리누나
참 길을 찾고 있는데 

어디 다른 이 있을 손가
발원하는 데서부터 

냇물이 떠나가게 되었으리라

 

근래 들어서 오도재를 검색하면 변강쇠와 옹녀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또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사실 예전에 변강쇠 옹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옹녀 묘 옹녀 샘이라는 것도 만들어 놨지만

예전에 없던 것들이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만든 거짓 전설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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