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김여사 검사 결과 확인이 끝나고 서둘러서 고향집으로 향한다.
내일과 모레가 벌초지만 상주에 동생이 오늘 온다고 해서 나도 미리 내려가는 길이다.
함양으로 내려가는 길은 차가 많이 막히지는 않는다.
중간중간 도로 공사하는 부분이 있어서 약간씩의 정체는 되지만 4시간정도 걸려서 도착을 했다.
딸내미 새집에 들어가서 옮길 것 좀 옮겨주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나섰다.
그전에 가본 낙지집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함양 특유의 장사습관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
도착시간이 2시20분쯤인데 "2시 30분까지 먹고 나갈 수 있겠냐?" 고 묻는다.
지금 들어가서 음식 나오면 2시 반이겠구만.....
함양의 풍습이라니 어쩌겠는가.
여기뿐이 아니라 함양에서 장사하는 방법은 타 지역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다.
저녁 8시가 넘으면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다.
24시 김밥집 정도만 있고, 일반 식당은 없다고 보면 된다.
카센터나 다른 곳도 대부분 마찬가지로 토요일 12시 이후에는 영업을 안 한다.
다행히 상림에 있는 박물관 옆에 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는데
우연히 간 것 치고는 꽤 좋은 선택이었다.
이곳은 식당이라기보다 고깃집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소고기 국밥을 시켰는데 육수도 좋고 맛과 기본 반찬도 좋았다.
식사 후 마트에서 벌초 시장을 보고
김여사와 딸내미를 데려다주고는 고향집으로 향한다.
상주 동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혼자서라도 벌초를 좀 할까 해서
친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예초기 기름이 없단다.
결국은 상주 동생 도착이 늦어져서 금요일에는 벌초를 못했다.
미리 준비한 조카들 선물을 줬더니 입이 찢어질 듯 좋아한다.
매번 벌초 때마다 고생하는 동생이어서 이번에
아들인 큰 녀석에게는 드론을, 7살 딸에게는 꽤 괜찮은 인형세트 선물했다.
동생 부부와1년 동안 살아온 얘기 하면서맥주 한잔으로 저녁을 때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인 토요일
5시도 안 된 시간에 잠을 깨어 준비를 한다.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둘이서 예초기 하나씩들 차에 실어서 출발을 했다.
오도재에 5대조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친할아버지, 당숙, 증조할머니,
또 누군지도 모르는 3 상보의 벌초를 끝내니 대략 10시쯤 됐나 보다.
그사이에 부산 4 촌동 생 둘이서 도착을 해서 큰아버지 산소 벌초를 했다.
연이어 도착한 당숙과 처음 오신 고모부까지 해서 작은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로 향한다.
사람이 많은 덕분에 난 호두나무 아래 풀을 베고
금년 추석에는 호도를 좀 줍겠구나 생각해본다.
작은할아버지 할머니 또 당숙의 벌초가 끝나고 도착한 전 인원이
선산으로 향한다.
예초기가 여러 대 돌아가니 선산 벌초도 빨리 끝난다.
참석 예정 인원의 반도 도착을 안 했는데 11시쯤에 벌초가 끝났다.
총 26 상보의 벌초가 11시에 다 끝난 것이다.
벌초가 일찍 끝난 바람에 술이 모자랄 것 같다.
금년 벌초가 모이는 바람에 고속도로가 막혀서 금년 식사 당번을 맡은 제수씨가
아직도 도착을 안 했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끼리
금요일 저녁거리로 간단한 점심을 때우고 술판이 벌어졌다.
한두 사람이 먹던 술상이 지나가던 아랫집 윗집 사람들이 하나씩 보태지더니
자꾸 커진다.
결국은 계획보다 빠는 시간에 마당에 불판을 편다.
미리 준비해둔 조명등을 옥상에 설치하고
마당에는 식당용 가스버너를 설치한다.
준비가 끝나기 전 도착한 당번이 준비한 삼겹살로 저녁 파티가 시작된다.
결국 염려했던 대로 술이 모자란다.
대략 열한 쌍의 부부에 술을 안 마시는 남자가 4명인데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술이다.
소주 한 박스+4홉들이 5명, 맥주 1박스가 초반에 동이 나서 늦게 도착하는 동생에게
추가로 술 심부름을 시켰다.
아랫집에 귀농한 분들이 있는 만큼 오늘 밤은 새벽까지 떠들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 덕분에 12시 전에 술판은 끝이 났다.
그렇게 즐겁게 올해의 벌초와 저녁 파티도 마무리가 되었다.
참 기분 좋은 날이다.
내가 평생 총무 겸 회장이지만 잘 따라주는 동생들과 형님들이 있고
많은 술을 마시면서도 듣기 싫은 소리나 험한 소리 한번 안 난다.
일요일 헤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웃고 지낸다.
형제들의 배우자들까지 즐겁게 웃고 간다.
재미있다고 소문난 덕분에 윗대에 당숙모나 고모, 고모부까지 참석을 해서
극구 사양하는 찬조까지 쥐어주신다.
당번이 아니어도 횟거리를 한 가득 가져오는 형님도 있고
자신이 농사지은 고구마을 몇 박스씩 가져와서 나눠주는 형님도 있다.
누가 일을 많이 했다고 생색내지도 않고
누가 늦게 와서 얼굴만 내밀었다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참석을 안 한다고 욕 하지도 않고 벌금을 받지도 않는다.
참석자들 중에는 자신의 부모님을 이미 날골당이나 호국원으로 모셔서
벌초가 필요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서운한 표시 절대 안 한다.
그냥 참석해서 즐기기만 하면 된다.
15년 전 애초에 내가 시작할 때 부탁한 사항이기도 하다.
안 온 사람 욕하지 말자.
무조건 부부동반 참석하자.
그리고 축제처럼 하자.
15년간은 잘 지켜온 우리들의 약속이다.
그렇게 2박 3일의 금년도 벌초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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