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아버지들의 회갑은 하얀 두루마기로 기억된다.
아버님 여덟살 때 돌아가신 친조부모님은 뵐 수가 없었으나
할아버지의 다른 형제 분들은 모두 뵈었다.
친할아버지의 형님인 큰할아버지 부부가 계셨고
고모할머니가 한분
그 아래로 작은할아버지 두 분이 계셨다.
그분들의 회갑시에는 항상 하얀 두루마기를 입었었다.
꼭 회갑이 아니라도 어디 나들이를 할 때는 매번 두루마기에
갓까지 쓰고 길을 나섰었다.
하얀 두루마기에 긴 곰방대가 환갑쯤 된 노인들의 모습이었다.
문명이 산에 막힌 지리산 골짜기다 보니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 어르신들은 크고 작은 행사때 대부분 한복을 입었었다.
그 당시의 회갑은 큰 마을 잔치였다.
마당에 멍석들 깔고 잔치상을 크게 차리고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니
회갑날이 살아생전에 제일 풍족한 하루였으리라.
덕분에 마을 사람들도 입가에 고깃기름이라도 묻힐 수 있었을 것이다.
96년
내 아버님의 회갑때는 다섯 남매가 모두 결혼을 했었고
9명 정도의 손주가 태어났었다.
할아버지 세대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자식들이 마련한
가족단위의 잔치는 했었다.
그때도 크게 잔치를 하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집안에 큰 행사이기는 했다.
이제 며칠 후면 나도 회갑이다.
아직까지 한명의 자식들도 혼사를 치르지 못했고
두 딸이야 자리를 잡았다지만 세째인 아들 녀석은 아직까지 공부 중이며
아직까지 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세상이 젊어지다 보니 환갑 넘어 진갑까지 직장 생활을 할 듯하다..
그만큼 젊어진 것이라고 자위하고 만다.
요즘 회갑에 잔치를 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그냥 60번째 생일일 뿐이다.
당사자나 가족이나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할 것도 없이 밥 한 끼 먹고 만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팔십 정도는 살아야
억울하지 않을만치 산 것 같고
그 이전에 죽으면 단명했다고 생각들을 한다.
"난 팔십넘어서 백 살까지 살 거"라고" 노래 불러봐야
힘없는 메아리다.
팔십 넘은 남자가 할 일이나 즐길 일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다.
그냥 밥 먹으면서 숨이나 쉬고 있겠지.
등산이나 취미활동 조금씩 하면서
"난 그래도 좀 낫다"라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봐야 도긴개긴이다.
우리네에게 남은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인 팔십 근처까지 산다고 하면 겨우 20년 이쪽저쪽의 시간이 남았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당사자가 느끼는 체감 속도는 또 더 빨라질 것이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라는 어느 예술가의 묘비명처럼
그냥 어영부영 시간 때우다 보면 어느 순간 팔십이 되기도 할 것이다.